反시장법 졸속 처리…경제에 악영향
“세계 10위권 경제 맞나” 탄식 쏟아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기업인과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과 관련해 “원칙적인 부분에 있어서 선진국 수준에 맞춰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것인 만큼 우리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법규로 대통령이 국제기준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사실을 왜곡 전달한 것이다.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쟁의 범위 확대, 사용자성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란봉투법은 선진국에서 오래전 폐지했거나 아예 시행조차 안한 제도들이다. 먼저 손배배상 청구 제한을 살펴보면, 영국은 노조의 불법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면책특권을 부여했으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했던 1980년대 이를 박탈했다. 면책특권이 노조의 무분별한 집단행동을 부추겨 영국 경제를 병들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도 불법파업에 참여한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물리는 것은 물론 해고까지 시킬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장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주요 경영 결정사항을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한 규정 역시 국제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인정하는 독일에서조차도 기업의 주요 경영결정 사항에 대해 노조 동의를 받지 않고 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을 허용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사용자 범위를 고용계약상의 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벤치마킹 사례로 들고 있는 일본과 미국 사례는 노란봉투법과는 다르다. 일본의 경우 1995년 최고재판소가 아사히방송과 사내하청근로자 간 분쟁에서 “아사히방송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할 사용자다”라고 판시하긴 했지만 일본 노조법에 이 같은 판결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는 파견법이 없던 시절의 판결로 파견법이 시행 중인 지금은 사실상 사문화된 판례다.
미국의 사례로는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2023년 10월 발표한 ‘공동사용자 판단 기준 시행령’을 꼽고 있지만 이 역시 2024년 3월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NLRB의 판단은 위법”이란 판정을 받았다. 공동사용자 기준 역시 파견법이 없는 미국에서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파견법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다. 다른 나라들도 ‘실질적 지배력’을 원·하청 간 교섭 대상 근거로 삼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선진국에는 왜 노란봉투법 같은 게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노조는 힘을 남용하는 무책임한 독점집단이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노조 파업은 비합리적 선택인 경우가 많아 노사 간 거래비용을 높여 국가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힘을 키우고 노사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노란봉투법을 도입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노조 무력화 정책을 쓰고 대체근로 허용, 작업장 점거 불허 등 노사 간 무기대등 원칙을 보장하는 것도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통해 노사안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또한 원·하청 간 ‘실질적 지배력’ 여부를 사용자성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근로계약 당사자를 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표적인 노동포퓰리즘 국가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반시장법이다. 노조 내 계파 간 주도권 싸움, 투쟁을 통해 내 몫을 극대화하려는 전투적 실리주의, 이념과 정치투쟁 등에 매몰된 한국의 노동운동 현실에서 노란봉투법은 노사갈등을 부추기고 기업에 타격을 줄 ‘노사갈등촉진법’으로 민생경제와 기업 경쟁력은 아예 뒷전이다.
전 세계 유례없는 법을 제대로 된 토론회나 공론화 과정 없이 졸속으로 만들다보니 “법 같지도 않은 법”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30년 넘게 대학강단에서 노동법을 강의한 어떤 학자는 “세계 경제 10위권 대한민국에서 경제에 타격을 입힐 게 뻔한 반시장 정책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처리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노란봉투법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임금협상을 벌이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골리앗크레인 농성에 이어 전면파업을 벌였고 하청 및 자회사 노조들의 원청 업체를 상대로 한 고소와 손배소 철회 요구도 쏟아지고 있다. 노조 힘이 세지고 기업경영이 타격을 받으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노동운동의 존재기반은 무너진다. 국정을 책임지는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왜 이런 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