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에 사과·배 등 수입 일정 앞당겨질 가능성
농업계 “검역 단축은 곧 개방”…정부 “기존 검역 틀 유지”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에서 미국이 한국에 농산물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쌀과 쇠고기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사과·배·복숭아 등 과채류 검역 절차 단축이 사실상 수입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국 통상 실무대표단은 최근 미국 워싱턴DC를 비공개로 찾아 미국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등과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다. 앞서 양국은 7월 30일(현지시간) 관세 협상을 타결하고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큰 틀에서 이를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협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실무협의에서는 농산물 관련 압박이 특히 거센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양국은 협상 타결 과정에서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협력 강화’에 합의한 바 있다. 이번 실무협의에서는 미국이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으며, 20년 넘게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미국산 사과 검역 절차에 대해 명확한 ‘시간표’를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993년 신청한 사과 검역이 20년 넘게 현재 8단계 중 2단계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 착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쌀과 쇠고기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한다. 검역 체계 역시 기존 틀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방침과 같다.
다만 당시 정부가 쌀과 쇠고기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성과를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비관세 장벽과 검역 절차 간소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로 지적됐다. 이번 실무협의에서 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농업계는 검역 절차 단축이 곧 개방 효과라는 점을 우려한다. 미국산 과채류 수입이 빨라질 경우 국내 과수 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검역은 시장 개방의 관문인데, 미국이 요구하는 시간표를 수용하면 국내 과수 산업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두고 적잖은 고민이 감지된다. 쌀과 쇠고기를 지켜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채류 검역 간소화가 사실상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농정 당국은 민감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가 대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와 통상 현안을 앞세워 협상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업 분야의 ‘마지노선’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을지가 향후 협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과 쇠고기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고, 검역 협력도 국민 안전을 전제로 한 절차적 협력일 뿐, 추가적인 시장 개방과는 다르다”며 “정부는 농업계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