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증권·운용사 사장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모험자본 공급은 업계 존재 이유이자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업계는 이에 공감하면서도 "원할한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서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의 위험값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원장은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투자회사 대표이사(CEO)’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통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비생산적 투자에 치중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며 “이제는 스타트업, 벤처, 중소기업 스케일업 전 과정에서 과감하고 충분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그는 “모험자본 공급은 정책 지원이 전제돼야만 고려할 수 있는 조건부 선택이 아니라 금융투자회사의 본연의 역할”이라고 못 박았다. 또 “기업과 금융투자회사를 잇는 매개자로서 다양한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업계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모험자본을 늘리려면 자본 규제상 위험값 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모험자본 공급 의무는 ‘자본시장 육성 및 기업 성장 지원’을 명분으로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나, 업계는 자본건전성 부담과 조달 구조상의 제약을 호소해왔다.
한 대형 증권사 대표는 “모험자본을 늘리려면 위험가중치 완화가 필요하다”며 “2028년까지 모험자본 의무 공급 비중을 25%까지 확대해야 하는데, 위험값 완화와 함께 종합투자사업자(종투사) 지정과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이 병행된다면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해 2028년보다 더 빨리 (모험자본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 규제 강화와 관련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 원장은 “투자자 보호 실패는 금전적 손실과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며 CEO들이 직접 내부통제를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소비자 보호를 강조해온 이 원장의 용어 사용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또다른 증권사 대표는 "이번 모두발언에서 ‘소비자’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투자자’라는 표현만 쓰인 것은 의미가 있다”며 “금융투자상품은 소비재가 아니라 자기책임 원칙의 투자재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월 발표된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의 후속 조치도 언급됐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해 앞으로는 투자자 정보 확인·성향 분석 시 총점 평가 방식이 사라지고, 적합성·부당권유 등 6개 항목별로 과락이 없어야 하는 방식으로 강화된다.
운용업계에서는 공모펀드와 주식형 펀드 활성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내 자본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투자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며 장기 투자 시 세제 혜택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디폴트옵션의 원리금보장상품을 제외해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현재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 제도는 적립금의 80%를 원리금보장상품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업계는 이같은 구조로는 장기투자 수익률을 올리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