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레거시, 韓은 선단 공정…양분 구조 가속
국내 투자 속도 빨라질까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부여했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인증을 철회하면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생산 체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에서는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등 레거시(구형) 제품 생산이 고착화되고, 한국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같은 최첨단 공정이 집중되는 ‘투트랙 전략’이 굳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최근 삼성전자 시안 공장(팹)과 SK하이닉스 우시·솔리다임 공장에 적용됐던 VEU 지위를 취소했다. VEU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할 때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들여올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특혜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간 이 제도 덕분에 장비를 수월하게 반입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현실화되면 두 회사의 중국 팹은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을 대규모로 생산 중인데 이는 각각 회사 전체 글로벌 생산량의 40~50%에 달하는 핵심 거점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도입하려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허가를 매번 받아야만 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두 회사가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서 전략적으로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팹을 레거시 생산 기지로, 한국 팹을 선단 공정 중심 거점으로 분리하는 흐름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과 하이닉스는 중국에서 DDR4와 같은 구형 제품을 생산해왔고, HBM이나 DDR5 등 첨단 제품은 국내에서 양산해왔는데, 앞으로는 이 방침이 굳혀진다는 의미다.
증권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공장이나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 솔리다임 공장 등은 기존에도 생산능력(캐파) 확장에 대한 계획은 없었으나, 선단 공정으로 전환을 염두해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 상무부의 VEU 인증 철회로 그 계획이 바뀔 조짐이다.
이동주 SK증권 연구원은 “VEU 철회로 인해 중국 관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되고, 국내 선단 공정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평택과 용인, 청주 등 국내 거점이 차세대 메모리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P4 공장에서 D램 1c(6세대 10나노급) 투자를 진행 중이다. 연말까지 월 4만5000장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 1분기에는 P5 공장 골조 공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도 청주 M15X 팹에서 D램 1b(5세대 10나노급) 전환을 가속화 중이며, 총 캐파는 월 9만 장에 달한다. 내년부터는 1c 공정 투자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투자 규모와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 외에도 향후 화성 등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검토 중이며,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차세대 D램과 HBM 생산 설비를 집중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과 맞물리면 선단 공정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