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런 트럼프의 언행에 국내외 모두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숙청이나 혁명 같은 상황’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특검을 지목한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미국이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을 회의적으로 주시하고 있으며, 협력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나타낸 거라며 소란을 떨었다.
한편, 이에 대해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단순 오해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고 보도하며, 정상회담에 앞서 서둘러 해프닝을 무마하려는 모양새를 보였다. 다른 한편, 미국 정치의 레토릭, 특히 트럼프의 언어전술을 연구하는 이들은 해당 발언이 전형적인 트럼프의 협상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상대방과 대면 전에 당혹하게 만들어, 상대의 전략을 무력화하고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몇 줄의 코멘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도 아니다. 적어도 그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대한민국의 취약점으로 봤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부 국내 매체에서는 BBC나 CNN 등 주요 외신을 보며 현 시점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세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자부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이런 매체들이 ‘정치적 올바름주의(PC주의)’로 인해 타국, 특히 비(非)서구권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는 사실 말이다. 한국의 정치적인 역사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외신 관계자일수록 현재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민정부 이후 4명이나 되는 전 대통령들이 각종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고, 2명의 대통령이 탄핵되는 경우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년간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상황을 다룬 독일 국제방송 ‘독일의 소리(Deutsche Welle)’의 줄리안 리얄은 한국이 이런 불안정한 정치 역사를 가지게 된 데에는 후진적 ‘보복 정치’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논했다. 한 진영이 경쟁에서 승리하면, 다른 진영에 처절하게 복수를 가하는 정치문화 말이다. 프랑스의 대표 매체인 르 몽드 또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에 대해 다루며, 한국의 양당 체제와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이 정치적 양극화와 ‘복수 정치’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생적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전 세계 몇 안 되는 비서구권 국가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런 회의적 시선 속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세계 여러 국가 지도자들과 교류하는 자리에서 어떤 장악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되기 한 달 전인 지난 5월 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한국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고 언명한 바 있다. 우리는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