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무형자산 투자 낮아
행정·규제 부담 여전히 높아
인센티브 강화 필요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 정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금융 접근성, 노동·세금 규제 부문에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제도 개선에서 나아가 기업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실행력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가 28일 발표한 ‘한국 기업 환경의 현주소와 새로운 성장을 위한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은행 기업조사(WBES)에서 국내 기업의 70.6%가 금융 접근성(33.9%), 세금 부문(20.9%), 노동 규제(15.8%)를 ‘가장 큰 경영상 장애물’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금융, 세금, 노동 분야에 대한 기업들 인식이 투자 활동에 차이를 만든다고 밝혔다. 금융 접근이 어렵거나 세금 부담을 크게 느낀 기업들은 설비 및 무형자산 투자 비율이 최대 21.1%포인트(p) 낮았다. 노동 규제를 부담으로 본 기업들은 오히려 설비 및 무형자산 투자가 증가했다. 이는 기업들이 인력 확충 대신 자동화나 기술 개발 중심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한국은 2023년과 202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품시장규제지수(PMR) ‘규제 영향 평가’ 항목에서 0.9점을 기록하며, OECD 평균(1.86점)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2018년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추진, 2019년 규제 샌드박스 시행, 2022년 규제비용감축제와 규제심판제 도입 등 제도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음을 시사한다.
반면, 같은 기간 ‘행정 및 규제 부담’ 항목은 2018년과 동일한 수준에 머물러 실질적인 부담 개선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세계은행 기업조사(WBES)에서도 한국의 인허가 절차 소요 평균 기간이 193.1일로 OECD 평균(18.4일)을 크게 웃돌아,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SGI는 기업들이 규제 체계뿐 아니라 금융, 노동, 세금 등 일상적인 경영 환경 전반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은행 등 간접 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세계은행 기업조사(WBES) 기준 금융 접근성에 대한 제약 인식 점수는 76.7점으로 OECD 평균(68.1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점수가 높을수록 금융 접근성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나타낸다.

세금과 관련한 인센티브 측면에서도 통합투자세액공제,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 지원책은 존재하지만, 반복적인 단기 일몰 연장과 제한적 적용 범위로 인해 예측 가능성과 체감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R&D 간접지원(세금 인센티브)의 절대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 낮고, 최근 5년간 한국의 지원 증가율은 11.3%에 머물었다.
외국인투자기업들 역시 한국의 규제 환경과 인센티브 체계에 대해 유사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외국인투자기업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4.4%가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규제 개선'을 꼽았고, R&D 활성화를 위한 정책수단으로는 세금 감면(46.9%)과 연구비 지원(23.5%)을 가장 많이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SGI는 단순히 제도를 갖추는 것에서 나아가 기업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예측 가능하고 가시적인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민간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에는 인공지능(AI) 강국 도약을 위한 과학기술 지원, 국민성장펀드 100조 원 조성과 자본시장 혁신, 신산업 규제 재설계 등이 포함됐다.
SGI는 기업의 성장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금산분리 원칙의 탄력적 운용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유사한 기업 대상 직접환급 방식의 세제 지원 △기술개발과 시장 선점이 중요한 산업에 한정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 제도 실험이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