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은 우리 경제의 혈맥이다. 특히 정책금융은 성장동력을 움직이는 산소와 같다. 정부가 구상하는 '진짜 성장'을 이루려면 '나라의 돈맥'을 책임지는 금융 공공기관의 구조적 병목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현재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HF), 기술보증기금 등 18개 금융 공공기관은 각각 다른 부처 아래 흩어져 유사한 기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경쟁적으로 정책금융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업은 사라지고 칸막이 행정과 실적 부풀리기만 남아 정책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비핵심적 중복 업무를 과감히 정리하고, 민간 부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손을 떼야 한다고 진단했다.
금융 공공기관의 대표적 중복 업무는 수출금융이다. 기획재정부 산하 수은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무역보험공사는 모두 '공적수출신용기관(ECA)'으로 지정돼 있다. 수은은 대출, 무보는 보험을 주로 하지만 실제 기업은 같은 해외 프로젝트에서 두 기관의 보증과 보험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2008년 수은법 개정으로 건별 한도를 두고 역할을 나눴지만 예외 조항이 늘면서 업무 중복은 여전하다.
수출기업 지원 업무는 산은과도 겹친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이 2019년 "정책금융이 분산화돼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주택금융 역시 금융위원회 소속 HF와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나눠 맡고 있다. 문제는 전세보증 시장에서 두 기관의 업무가 중복된다는 점이다. HF의 '전세자금보증'과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 동일한 거래에 동시에 적용되며 실적이 중복 계상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힘을 주고 있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지원 업무도 중복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융위 산하 신용보증기금과 중소벤처기업부 소속 기보는 선정 기준은 다르지만 모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증업무를 수행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증재단까지 더하면 사실상 '3중 보증' 구조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대출 기능도 겹친다. IBK기업은행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모두 정책자금으로 운전·시설자금을 빌려준다.
서민금융도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6년 서민금융진흥원 설립으로 미소금융·햇살론 등을 총괄했지만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업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맡고 사업자 햇살론 재보증은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수행한다.
민간 금융사와 업무가 중복되는 곳도 있다. 개발 금융의 주축인 산은은 기업금융ㆍ산업구조조정ㆍ시장안정 등 광범위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시중은행과 다른 정책기관과의 경합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임규빈 민주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비핵심적 중복 업무는 정리하고 민간이 영위 가능한 사업은 과감히 이양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부처 간 연계 강화와 데이터 공유 등 일원적 관리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