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칼럼] ‘혼종의 시대’ 그래도 해명이 필요하다

입력 2025-08-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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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공법학

안보·통상서 ‘불편한 타협’ 감내해
사면논란 등 정치적 선택에 물음표
갈등 최소화 위해 국민이해 구해야

바야흐로 혼종(混種·hybridity)의 시대다. 순종보다 혼종이 우세하다. 정치가 특히 그렇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고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 것을 보혁교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정작 두 정권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였는지는 논란거리다. 지리멸렬의 와중에서 이른바 ‘반탄’ 대표가 득세한 국민의힘의 모습은 지난 정권의 극우농도가 얼마나 깊고 짙었는지 잘 보여 주지만 결국 보수와 극우의 혼종성을 드러낸다. 이재명표(標) 혼종정치는 출범 초기의 불안 탓인지 실용주의를 표방하다 지지세력의 반발과 정책혼선을 자초했다. 너무 당연한 ‘국민주권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전 정권과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데는 그다지 효험이 없었다.

무엇보다 안보와 외교, 통상 관계에서 험악한 도전에 부닥쳐 좌절하거나 타협을 강요받았다. 북한과의 관계 회복 의지를 내비쳤다가 무참하게 혹독한 욕설만 얻어들었다.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의 합의”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타협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험난한 역경이다. 관세폭탄을 필두로 한 트럼프 라운드로 끌려들어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미명의 안보조정 압력 등 불편·불만의 양보와 타협을 강요받는 처지로 몰려 있다. 안보에 여야,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할 테지만, 이재명표 혼종정치가 정권 출범 초기부터 곤경에 봉착해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혼종성 이슈는 국내 정치에서도 불거졌다. 주식양도세 과세기준 논란은 코스피 5000 공약을 기대한 허니문 랠리로 한껏 들떴던 주식시장에 상반된 시그널을 주어 개미들의 국장탈출을 초래했다. 이례적으로 절박한 경제비상상황을 강조하면서 ‘노란봉투법’과 ‘더 세진 상법’을 밀어붙인 것도 그랬다. 대통령지지율 하락 원인을 제공한 특별사면도 사면거래 논란, 끼워팔기식 사면 등 민주당 정권의 도덕적 정체성에 물음표를 찍게 만드는 이벤트로 끝났다.

사실 정치의 혼종성은 불가피하고, 선악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든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유감스럽지만 순수의 시대는 갔다. 자연계에서도 순종보다는 잡종이 더 우세하다. 정치에서도 순수한 혈통이나 이념보다는 혼종성이 결국 살아남는다. 가치와 이념에 대한 올곧은 헌신, 정책 일관성만으로는 변화무쌍한 현실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외관계는 말할 나위도 없다. 배후에 국익이라는 만능의 간지(奸智)가 꿈틀거리지만 혼종성이 오히려 미덕이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주요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정권교체는 단지 해외토픽이 아니다. 그저 안이하게 국제관계의 변화라고만 볼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정권교체와 맞물려 때론 운신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때론 협력 공진의 꿈도 꾸게 하지만 늘 경계를 넘나들며 나라와 사람들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국제와 국내가 따로 없는 분야가 늘고 있다. 관세폭탄이 그저 대외통상 이슈로 해당 수출기업들에나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국익을 위해 싸우면서 나라와 정권의 정체성과 일관성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종의 정치는 여전히 해명이 필요하다. 정부가 왜 특정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지를 의아해할 많은 국민을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를 소명해야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물며 정부의 선택에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사람들, 기업들, 지역이나 직종에는 해명이 불가피하다. 갈등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이해와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혼종의 정치가 수반하는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 문제가 경제와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상 정부의 설명의무는 혼종정치의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국익이든 상황의 예외적 특수성이든 상대국이나 대상집단의 특성이든 정치와 정책 결정에 차질을 빚지 않는 단계, 시기를 택해 반드시 그 책임자가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국민주권정부의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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