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과의 동침'…한미 합작법인 설립 급물살
24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를 둘러싼 '진실게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합의를 두고, 여당을 중심으로는 "1조 원대 족쇄를 찬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야당과 한수원 측에서는 "원전 수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안보 동맹 강화"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논란의 두 주체인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합작법인(JV)' 설립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해묵은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 주목된다.
22일 원전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논란의 핵심은 올해 1월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이다. 체코 원전 수주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지식재산권 분쟁을 끝내기 위한 이 합의에는, 한수원이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약 9000억 원(6억5000만 달러)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체결 △약 2400억 원(1억7500만 달러)의 기술 사용료 지급 등 1조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50년의 계약 기간과 함께 북미, 유럽 등 주요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조항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자, 여권에서는 "남는 것 없는 장사"라며 전임 정부를 향한 공세를 펴고 있다.
반면 한수원과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 측 동의 없이는 원전 수출이 어려운 현실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합의 내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순 없지만, 감내하고도 이익을 남길 만하다"고 밝혔으며, 국민의힘은 "체코 원전 수주뿐 아니라 K원전의 미국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는 윈윈 협상"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체코 정부가 계약의 전제 조건으로 양사 분쟁 해결을 요구한 만큼, 합의가 없었다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이러한 진실 공방 속에서 최근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합작법인, 이른바 '팀 코러스(Team KORUS)' 설립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경쟁해 온 두 기업이 손을 잡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합작법인 논의는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설계와 원천 기술에서는 앞서지만, 시공 능력과 운영 노하우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수원은 원전 설계부터 시공, 운영, 보수까지 전 과정에 대한 노하우를 갖춘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기업으로, 특히 정해진 예산과 기간 내에 원전을 건설하는 시공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력과 한수원의 시공·운영 능력이 결합하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황주호 사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웨스팅하우스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어서, 합작법인 설립 논의는 더욱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1조 원 족쇄'라는 비판을 받던 합의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열리면서, 체코 원전을 둘러싼 평가는 다시 한번 기로에 섰다.
양사의 협력이 구체화될 경우 K원전의 미래에 값비싼 비용을 치른 계약이 아닌,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투자였다는 평가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