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계모의 딸 시각에서 본 신데렐라 이야기

입력 2025-08-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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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어글리 시스터’,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 2025년>

신데렐라 이야기는 넓게는 가난한 여자가 부자 남자와 결혼하는 내용이면 다 포함될 수 있다. 좋은 예로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1990)을 종종 신데렐라에 비유한다. 주인공이 계모 밑에서 살다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통해 왕자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한정하면 범위는 크게 줄어들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 그런 민담이 많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이야기도 거기 포함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디즈니의 ‘신데렐라’(1950)는 17세기 유럽에서 기록된 버전에 바탕을 두었다.

19세기 초에 그림 형제가 쓴(기록한) 버전은 그들의 다른 동화와 마찬가지로 잔혹하다. 계모의 딸들이 신발에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이나 발뒤꿈치를 자른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어글리 시스터’는 잔혹성 면에서 이 버전과 비슷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은 친부모를 잃은, 즉 신데렐라에 해당하는 인물(아그네스)이 주인공이 아니라, 계모의 큰딸(엘비라)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제목의 ‘시스터’는 그녀를 가리킨다. 그녀는 전통적 버전과 달리 못되지 않다. 다만 아름다워지기 위해 끔찍한 과정을 감내한다. 나중에는 스스로 발가락도 자른다!

외모를 위해 거의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 여성을 풍자한다고 하겠다.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가 문제라고 할 사람도 많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사실 엘비라는 제목이 말하는 만큼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그건 이야기의 개연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목의 ‘못생긴(어글리)’이 ‘못생겼다고 하는’의 의미일 수도 있다. 즉 일부 사람들의, 혹은 여성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아그네스도 전통적 신데렐라와 다르다. 외모가 뛰어난 건 맞는데 성격이 착하지만은 않다. ‘처녀’도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성관계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그 남자는 가난한 하인이다. 그녀는 그를 버리고 왕자로 향한다(그걸 합리화하는, 그가 바람피우는 것으로 보이는 짧은 장면이 있긴 하다). 아그네스나 엘비라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다만 한 명은 운 좋게 금발의 미녀로 태어났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용모다. 그것으로 운명이 갈린다. 후자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다만, 그건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의 해석이고, 보는 중에 관객은 후반에 들어서도 결말이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 영화에는 결점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한 명 있다면 엘비라의 동생이다. 외모에 대한 자의식이 없고 성격이 무난하다.

이 영화가 ‘공포 영화’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엽기적 장면이 종종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호러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다. 인물들의 성격과 갈등 관계가 잘 묘사되었다. 레아 미렌이 연기한 엘비라는 대부분 장면에 등장함에도 몰입이 유지된다. 엘비라의 어머니, 즉 아그네스의 계모도 연기가 좋았다. 딸의 출세를 위해 서슬 퍼런 모습을 보이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비굴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감독 에밀리 블리치펠트의 데뷔작이라는데 매우 훌륭하다. 의상이나 세트 디자인 등도 첫 작품 같지 않다.

신데렐라가 아니라 의붓자매의 시각으로 그 이야기를 재해석한 영화가 전에 없지는 않았다.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어글리 스텝시스터의 고백’(2002)이 있었다. 다만 TV 영화라서 위의 영화와 전반적인 수준에서 비교하기 어렵고, 또 발가락을 자르는 등의 잔혹한 내용은 없다. 현재 영화로 각색 중이라는 2019년 소설 ‘스텝시스터’도 있다. 이건 원작의 이야기가 끝난 후, 즉 신데렐라와 왕자가 결혼한 후의 이야기다. 주인공 이사벨은 발가락을 잘랐던 과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오늘 소개한 ‘어글리 시스터’의 속편이 될 수 있겠다.

고전 이야기의 악역이나 조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가 근래 한 트렌드 같다.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편 원작의 의미가 뭔지 잠시 잊기도 한다. 원래 신데렐라가 행복을 찾은 건 외모가 아니라 착한 심성 때문에 하늘이 도와서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냉소적으로 변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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