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통화전쟁…패권경쟁 새 불씨 지펴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미·중 간 통화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지난 7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지니어스법(GENIUS ACT)’이라고 불리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에 서명했고, 8월 1일에는 홍콩에서 홍콩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리감독의 내용을 담은 ‘스테이블코인 조례’가 시행되었다. 두 법안 모두 법정화폐에 연동된 자산으로 결제와 정산에 사용되고 관련 규제도 큰 틀에서 대동소이하다. 미국은 시가총액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기관의 관리 주체가 다르고, 홍콩은 단일 규제 등 차이점도 존재한다.
2021년부터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 대응해 역외 위안화 시장을 내세워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암호화폐 생태계와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재편할 경우 중국에 미칠 시스템적 리스크가 클 수 있다는 우려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위안화 국제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의하면, 2024년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중 90% 이상이 달러 연동인 만큼 이는 결국 달러패권이 더욱 공고해지면서 위안화 신뢰도 하락에 따라 위안화 국제화에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플랫폼인 코인마켓캡에 의하면, 달러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61%)와 서클(USDC·24%)의 시가총액이 약 2300억 달러로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테더가 2019년 유일하게 역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테더 CNH)을 발행한 바 있으나, 올해 7월 기준 시가총액이 약 265만 달러로 거래량은 미미하다. 2025년 7월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규모가 27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스테이블코인 결제건수가 16억 건, 거래규모가 약 7조3000억 달러에 달할 만큼 국경 간 거래에 있어 강력한 결제 도구로 부상한 만큼 중국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티은행은 2030년 스테이블코인 시장규모가 3조7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판궁성 인민은행장이 지난 6월 중순 상하이 루자쭈이(陆家嘴) 금융포럼에서 “블록체인과 분산 원장 등 신기술이 국경 간 결제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결제기능이 기존 결제시스템을 재편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중국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콩 최대 암호화폐 장외거래소인 크립토HK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 거래량이 2021년 이후 무역결제 용도로 중국인의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7월 개최된 상하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술적 검토와 관리감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인민일보 산하 증권시보도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 스테이블코인 조례가 시행되면서 중국 빅테크 기업들과 투자은행들이 역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 계열사로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엔트 인터내셔널과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엔트 테크놀로지가 발행기관으로 신청했고, J코인(JCOIN)과 조이코인(JOYCOIN)를 발행한 징둥닷컴의 블록체인 자회사인 JD코인체인도 신청했다.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결국 중국 본토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시장 개방을 위한 실험단계인 셈이다.

향후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의 방향은 크게 2가지 운영 모델을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쌍궤병진(雙軌竝進) 전략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는 우선 역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CNH Coin)의 시범적 시행 이후 역내 위안화로 확장하는 ’선(先)역외, 후(後)역내 모델‘이다. 홍콩 스테이블코인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점진적으로 상하이 자유무역구, 하이난 자유무역항구, 웨강오 대만구(Greater Bay Area·광둥성-홍콩-마카오)의 특수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자유무역계좌를 통해 역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과 연동시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상하이 자유무역구 린강신구(临港新片区) 내 무역결제를 위한 역내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시범적으로 발행하는 방식이다. 혹은 청산조직, 국영상업은행, 투자기구가 공동으로 상하이 자유무역구 내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운영기구를 설립해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방식은 역내와 역외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간 상호 스와프 방식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역내 스테이블코인은 단기적으로 국경 간 무역과 사업 거래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고, 역외 스테이블코인은 홍콩이 위안화 국제화 기능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디지털 위안화와 스테이블코인을 연동시키는 방식의 모델이다. 위안화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위안화 간의 상호 보완적인 메커니즘 구조로 연동시키는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달러화나 국채, 금 등 안전자산에 가치를 고정한다면,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에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디지털화폐 결제 프로젝트인 ‘엠브리지(mBridge)’가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과 연동되어 사용될 수도 있다.
엠브리지는 중국·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앙은행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결제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 혹은 송금하면 홍콩에선 동일한 가치의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으로 수취하고, 반대로 홍콩에서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위안화로 교환하는 식으로 연동 지급 결제하는 모델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미·중 간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탈달러를 시도하는 모든 국가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따라서 해외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이 제재 회피나 자금세탁의 통로로 사용될 경우 발행기관 및 해당 네트워크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될 수 있다. 디지털 통화를 둘러싼 미·중 간 치열한 패권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