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계가 기업의 성장유인을 약화시키는 규모별 차등규제가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보호·나눠주기’ 대신 ‘성장·프로젝트’ 중심의 규제 체계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0일 대한상의회관에서 ‘기업성장포럼 발족 킥오프 회의’를 열고 한국경제의 역동성 저하 원인과 개선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호준 중견련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지난 20년간 미국과 한국의 기업 순위를 분석한 결과 미국은 과거 엑손모빌, GE, 마이크로소프트, 씨티은행 등이 10대 기업을 차지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곤 인공지능(AI)을 선도하는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알파벳 등 혁신기업들로 재편됐다.
반면 한국은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으로 20년 전과 다르지 않았으며, 그 결과 10대 수출품목도 반도체, 자동차, 선박, 무선통신기기, 석유제품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참석자들은 기업 성장유인 약화 원인으로 꼽히는 차등규제 해소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은 “기업 생태계의 무게중심을 ‘생존’에서 ‘스케일업’으로 옮겨야 할 때”라며 “될성부른 떡잎(기업)을 잘 선별해 물과 거름을 듬뿍 줘야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의 외부자금출자한도(현행 40%) 확대로 성장성 있는 기업들에게 풍부한 자금이 유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이 스스로 ‘성장하고 싶도록’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면서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 해소, 각종 금융·세제상 지원 차별 완화, 과도한 경제형벌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정부에서도 규모별 차등규제 해소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속도감 있는 정책 성과를 위해 시행령·시행규칙 변경만으로 가능한 조치부터 이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패권경쟁이 치열한 첨단산업군에 한해 금산분리, 동일인 규제 등을 예외허용하는 방안도 대안”이라며 “기업 규모가 아닌 산업별 특성에 따른 규제방식으로 정비하되, 궁극적으로는 일정한 규제 원칙만 정하고 자율규범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준 중견련 부회장은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는 경제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가치창출 중심의 접근이 중요하다”며 “정책 평가의 방식도 단순 나눠주기식의 아웃풋(Output)이 아닌 무엇을 이뤘는지의 아웃컴(Outcome)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정책이 중소·중견기업 등 특정 기업군에 한정하는 ‘지원’ 정책으로는 현 상황에 안주하려는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도전과 혁신을 통해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소기업→중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 성장의 전주기적 관점으로 긴 호흡의 ‘육성’ 정책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 생태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규제 누증 구조를 꼽았다.
김영주 부산대 교수는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뿐 아니라, 금융지주회사법·조특법·유통산업발전법 등 주요 법안을 살펴보면, ‘규제가 누증 구조’ 성격”이라며 기업 규모 구간에 따른 지배구조 규제의 단계적 강화(상법), 자산총액 확대에 따른 공시·내부통제 고도화 구조(자본시장법), 그룹 규모에 비례한 연결기준 감독·보고·통제요건강화(금융지주회사법), 대규모 점포의 등록·영업시간·의무휴업 등 사업행태 규율(유통산업발전법) 등을 예로 들었다.
곽관훈 한국중견기업학회장은 “성장 단계에 있는 중견기업은 재정적 지원보다는 규제 완화 등 제도적 지원이 더 절실하다”며 “일정 조건을 갖춘 우량 중견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추진 시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은 중소·중견기업에 한정(입지보조금)돼 있거나 기업 규모별로 차등 지원(설비투자보조금)하고 있고, 국회에 제출된 기회발전특구 관련 법안에도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은 중소기업과 매출액 5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제한돼 있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조만간 ‘기업성장포럼’을 발족해 주요 관계부처, 국회 등과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정책 대안을 함께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