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만의 원전 수출 쾌거로 여겨졌던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사업이 실제로는 향후 수십 년간 한국 원전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족쇄 계약'으로 드러났다.
19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는 양측이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국가와 불가능한 국가 명단이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문에 따라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가입국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은 웨스팅하우스가 독점적 수주 활동을 벌이는 시장으로 규정됐다. 사실상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선진국 시장 진출 길이 막힌 셈이다.
반면 한수원·한전은 중동, 동남아시아, 남미 등 일부 신흥 시장에서만 신규 수주 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이는 '팀 코리아'가 체코 원전 수주를 발판 삼아 네덜란드 등 유럽 시장 전체로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당초의 장밋빛 전망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수원은 이 합의 이후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등에서 잇따라 원전 사업을 중단했으며, 이날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사업에서도 "일단 철수한 상태"라고 공식 확인했다.
유력 후보지로 꼽히던 폴란드 사업마저 포기한 것은 합의문의 시장 제한 조항이 현실화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을 내어준 대가는 혹독했다. 합의문에는 한국이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약 9000억 원의 기자재·용역을 구매하고, 2400억 원의 기술사용료를 별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더해, 이 지급을 보증하기 위해 원전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 원) 규모의 신용장까지 발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미래 기술 주권이다. 해당 계약은 50년간 유효하며, 한국이 독자 개발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을 수출할 때조차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은 미래 먹거리 시장마저 통째로 내줄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여권에서는 "성과에 급급한 굴욕적 불공정 계약", "국부 유출을 넘어선 매국 계약"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통령실은 산업통상자원부에 관련 계약 내용에 대한 진상 파악을 지시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와 한전, 한수원에선 아직까지 공식 입장이 없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