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대전 전범국인 독일을 포함한 참전국들은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 남자를 잃었다. 이로 인한 노동력 급감에 공장이 멈추고 경제가 무너졌다. 이는 여자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했다. 사회적·제도적 기반은 미흡했다. 여자는 남자의 역할을 대체하면서도 같은 권리를 받지 못했다. 경제활동 참여 시 가사·양육 등 전통적 역할에 공백이 생기는 문제도 있었다. 이에 각국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보장하면서 모성보호제도를 확충하고 보육시설을 늘렸다. 아동·가족에 대한 현금성 지원도 대폭 확대했다.
스웨덴 등 중립국들은 인구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세계대전이 가족정책 발전의 계기가 됐다. 주요국 산업시설 파괴로 전쟁특수를 누렸는데, 여자의 경제활동 참여 없이 늘어난 생산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참전국들과 유사한 방향으로 가족정책을 확대했다.
유럽 가족정책은 대체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발전했다. 특히 세계대전 참전국들은 인구 복구, 국가 재건이 시급했다. 계층과 세대를 막론하고 국가와 개인 간 이해관계가 크게 어긋나지 않았기에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정책의 원칙과 방향에 관한 합의를 이뤘다.
반면, 한국은 6·25 전쟁 이후에도 경제·산업의 핵심이 남자였다. 여자는 가정에서 가사·양육에 집중했다. 여자 경제활동 참여가 급증한 건 1990년대 들어서다. 1990년대 초부터 여자 대학 진학률이 오르면서 고용률도 함께 상승했다. 또한,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기업 도산과 구조조정·정리해고가 속출하자 ‘백수 가장’이 늘고, 취업시장에 주부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동력 확보가 절실했던 유럽과 여자 취업자 증가의 배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취업 형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질 좋은’ 일자리의 총량이 줄었다. 남자 노동력이 부족했던 유럽과 달리, 한국은 남자 일자리가 부족했다. 여자가 취업하려면 교육·취업시장에서, 취업 후 직장에서 남자와 치열히 경쟁해야 했다.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을 원치 않던 이들은 낮은 임금, 높은 업무강도로 남자가 취업을 꺼리던 일자리에 주로 취업했다.
그런데 한국은 인구 복구, 국가 재건을 위한 노동력 확보를 목적으로 설계된 유럽의 가족제도를 그대로 수입한다. 또한,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생략한다. 이런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철학과 원칙도 없이 독일, 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들의 제도를 벤치마킹한다. 그 결과로 한국은 여자 취업자 간 격차 확대, 성 갈등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만들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목적 없는 제도 도입이다. 유럽의 가족정책은 사회문제 해결이 목적이었고, 그 사회문제는 노동력 부족이었다. 한국은 가족정책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 유럽을 따른 정책이 효과를 못 내는 건 당연하다. 목적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 해결하려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공론화도 이런 차원에서 필요하다. 단순히 특정 제도의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바람직한 사회상을 주제로 토론해야 한다. 정책을 만드는 건 다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