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예방접종은 단순한 질병 대응을 넘어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적 투자입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 시점에서 예방접종을 통한 질병 노화 관리로 건강 수준을 삶의 마지막까지 늦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12일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열린 ‘2025 헬시에이징 코리아’ 포럼에서 “고령층 증가가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선 비용 효과적인 국가 차원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되는 성인 예방접종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성인 NIP 백신은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23가) 2종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만 65세 이상 성인에게 △코로나19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대상포진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A형 간염 △B형간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8종의 백신을 권고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독감은 10세 미만의 환자가 더 많지만, 독감으로 인한 의료비용은 노인에서 더 크다”며 “65세 이상의 경우 독감으로 인한 폐렴 발생, 기존 질환의 악화 등으로 의료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고령층에서의 감염병 질환은 단순한 감염병이 아니라 환자가 가진 만성질환 악화한다는 측면에서 사망률, 비용 증가에 영향 미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세인데 건강 수명은 64.4세에 불과하다. 약 18년의 격차가 나타난다. 노인 인구 비중이 늘면서 의료비도 급증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7.9%지만, 전체 진료비의 44.1%를 차지했다. 질병 치료 중심의 의료 시스템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길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대상포진과 RSV 백신의 비용-편익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분석 결과 대상포진 백신의 경우 국내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할 때 투입 비용 대비 사회경제적 편익(ROI)이 약 1.52로 나타났고, RSV백신은 60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할 때 ROI가 1.65로 나타났다. ROI가 1을 초과할 경우 투입된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교수는 “고령층 증가로 의료비와 질병 부담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백신이 도입되면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해외 연구가 많다. 백신은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감염병 예방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돼도 현실에서는 자발적으로 예방접종에 참여하는 데 여러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백신에 대한 정보 부족, 고령층의 높은 빈곤율, 질병에 대한 낮은 인식 등으로 백신 접종률을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NIP에 포함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접종률이 82.5%에 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상포진의 접종률은 38.2%에 불과한 상황이다.
대상포진 백신의 경우 일부 지자체가 자체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172개 지역에 그친다. 대상자 선정기준이나 지원 범위에도 차이가 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 수준이 유사한 미국, 영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뉴질랜드, 호주 등은 이미 NIP에 포함됐다”며 “지역 간 격차는 형평성 문제를 불러온다. 동일한 연령대와 소득 수준의 노인이라 하더라도 예방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RSV백신은 비교적 최근에 도입돼 캐나다와 영국 등에만 NIP가 도입됐고, 주요 국가에서는 NIP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이 교수는 “중증도에 비해 최근 개발된 NIP에 도입된 국가는 많지 않지만, 임상적으로 질병 비용이 크고 사회적 간병 부담, 생산성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공 보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고령층의 예방접종 접근성을 높이고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의 단계적 투입 또는 공동부담(co-payment) 구조 등을 고려해 장기 로드맵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나 리디거(Gunnar Riediger) 한국 GSK 대표이사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고령층의 건강 유지와 기능적 자립성 보존이다”라며 “치료보다 예방을 우선시하며 고령층 대상 NIP를 확대해야 한다. 고령층은 면역기능 저하와 만성질환 동반으로 감염병에 발생 시 중증 합병증과 사망 위험이 현저히 크다. 개인의 질병 예방을 넘어 고위험군을 보호하고 감염병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성인 대상 예방접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