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보겠다고 일본 갔지만, 돌아와선 숨졌다."
부산 근교에 사는 70대 여성 암환자 A씨의 죽음이 지역의료계를 흔들고 있다. 치료를 위해 일본까지 원정 진료를 떠났다가 급성 흉곽삼출 증상으로 귀국, 부산에서 응급수술을 받고 수도권 이송을 대기하던 중 숨진 A씨의 사연은 지역 의료의 구조적 한계와 국내 줄기세포 치료 규제의 이중고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A씨는 지난해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에서 난소암 수술을 받은 뒤, 대장과 림프, 방광 등으로 전이돼 항암 치료를 받아오던 중 “면역 줄기세포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 7월 15일 일본으로 향했다. 국내에서는 줄기세포 치료가 사실상 금지돼 있어, 70세 노인은 생명을 걸고 타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치료 직후 급성 흉수(흉곽삼출) 증세가 나타났고, 현지 병원은 "전이 암에 의한 폐에 물이 찬 상태"라며 입원을 권유했다. 당황한 가족은 급히 귀국을 결정, 평소 연락을 주고받던 부산 온병원 김동헌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김 병원장은 응급실 당직의사와 중환자실 팀을 긴급 소집해 A씨의 귀국에 대비했다. 이후 영상의학 전문의 최기복 소장은 흉수 배액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A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서울 전원 계획은 "권역 외 이송 불가"라는 민간 이송업체의 판단으로 무산됐다. 수도권 병원을 목표로 한 전원은 '권역 제한'이라는 벽 앞에 무너졌고, 결국 A씨는 치료받지 못한 채, 18일 오후 심폐기능부전으로 숨졌다.
A씨는 '더 나은 치료'를 기대하며 일본으로, 수도권으로 향했지만, 결국 응급상황을 맞아 돌아온 곳은 부산이었다. 하지만 지역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고도 수도권 이송은 결국 실패했다.
지역 의료기관은 응급 대응과 수술을 성공적으로 처리했지만, ‘치료받기엔 부족하다’는 인식과 구조의 한계에 직면했다.
김동헌 병원장은 "의료진과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도 수도권 병원만 찾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환자 입장에서 지역은 여전히 '최후의 수단'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줄기세포 치료를 파킨슨병, 실명위기 등 일부 질환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정맥주사 방식 면역치료는 전면 금지돼 있다. 반면 일본은 자가 및 동종 줄기세포 치료 모두 가능하며, 암환자들이 NK세포나 T세포를 배양해 현지에서 직접 주사 맞는 치료가 가능하다.
회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치료받을 길이 막힌 암환자 1만~2만명이 매년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의료 규제가 국부 유출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김 병원장은 “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역민의 수도권 진료로 인한 순비용은 교통·숙박비만 연간 4121억 원, 간접비용까지 포함하면 4조 원을 넘긴다”며, “지역에서 모든 암 치료를 마칠 수 있도록 완결형 의료시스템 구축과 줄기세포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례는 A씨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은 치료'를 찾아 수도권과 일본을 전전하는 수많은 암환자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지역 병원, 그리고 너무 늦은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