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크기 패널·빨간 모자도 준비
제조업 부흥 목표로 조선에 꽂힌 트럼프
필리조선소 방문 보고 받은 뒤 협상 타결

한미 관세 협상이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 타결됐다. ‘마스가(MASGA·Make America’s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명칭의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조선업 재건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의 정치 구호에서 따온 직관적 명칭이 유효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마스가라는 이름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n Great Again)’에서 따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 실무진들이 고심 끝에 작명했다. 마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부터 내세운 슬로건이다. 단순한 문구를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정체성과 다름 없다. 특히 빨간색 마가 모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층을 상징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지시로 협상팀은 마스가 프로젝트 내용을 담은 가로세로 1m 크기의 시각자료(패널)를 준비했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이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모두 복잡한 설명을 싫어하는 성향을 고려했다. 패널에는 한국과 미국 지도 위 조선소 등 생산 거점과 향후 투자 계획이 담겼다. 패널은 호텔에서 빌린 식탁보로 패널을 감싸져 협상장으로 옮겨졌다.
선명한 슬로건, 시각적 메시지, 간결한 연출이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력을 사로잡는 효과를 냈다. 협상팀은 마가 모자처럼 마스가를 새긴 빨간 모자도 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단은 사전에 역할놀이까지 하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고 결국 이 전략은 통했다.
조선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부흥의 핵심 산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한국 조선업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한때 세계 최고 조선 기술 강국이었던 미국은 중국에 해양 패권을 내준 지 오래다.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존스법은 미국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문제는 미국 해운사들이 외국산 선박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산 선박을 구매하지 않게 되면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선박 건조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으나, 현재는 현지 조선소 20여 곳에 발주된 상선 수주잔고(남은 건조량)가 29척에 불과할 정도로 건조 역량이 후퇴했다. 한국은 세계 최정상급 LNG선, 군수 지원함, 첨단 상선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조선이 협상 테이블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협상장 밖에서는 재계가 바쁘게 움직였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7월 30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한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만나 양국 조선협력 구상을 설명했다. 펠란 장관은 미 군함 유지·정비·보수(MRO)와 건조를 책임지는 해군성 수장이다. 보트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조선 산업 재건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한화그룹이 2024년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미국 내 직접 투자가 진행 중인 곳이다. 김 부회장은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선박 건조 유지보수(MRO)를 주도하겠다고 설득했다. 이들은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는 훈련생들과 만나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가져온 자동용접 설비 등도 돌아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트 국장과 펠란 장관의 필리조선소 현장 방문 결과를 보고 받은 뒤 관세협상 타결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