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은 쉬웠던 적이 없다. 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고, 고환율이 덮치면 환리스크는 물론 납품 지연 같은 도미노 파장을 감당해야 한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노조 파업이 시작되면 장기화할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고물가나 최저임금 인상도 부담이다. 미중 갈등처럼 정치·외교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거대 악재에 직면하면 속수무책으로 소나기를 맞아야 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리스크 방어력이 낮은 중소기업들은 이런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삼중고, 사중고 시엔 절벽 끝에 외발로 서 있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의 지속적인 관세 엄포는 중소기업엔 재앙에 가깝다. 정부와 대기업도 전전긍긍하며 몸을 웅크리는 마당에 체급도 체질도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이에 대응할 뚜렷한 대책이 없다. 관세 쇼크에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도 단기간에 새로운 활로를 찾거나 현지 공장 설립 등 과감한 투자는 꿈도 못 꾼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논의 테이블에서 손을 맞잡는 모습이 공개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크다.
중소벤처기업부가 4월 진행한 '중소기업 수출 영향 분석'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기업 58.1%는 미국이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할 때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답했다. 15%의 상호관세가 포함돼 총 25%의 관세가 매겨지면 81%에 달하는 중소기업들이 수출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봤다. 중소기업들은 관세 부과로 인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수출국 다변화 부담'(46%)을 꼽았다. 관세 대응을 준비 중인 기업은 10곳 중 2곳(20.4%)에 불과했다.
한국에 '15% 관세'라는 기준선을 던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협상 이후 유럽 산업계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무역협회의 보고서를 보면 유럽상공회의소는 15% 관세가 EU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고착화할 구조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식음료업계는 고부가 소비재의 가격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유럽자동차업계는 '미국내 조립 요건'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프랑스 중소기업연합회는 " 중소기업들에 재앙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발했다.
협상 테이블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어떤 카드를 내놓고, 어떤 전리품을 챙길 지에 따라 우리 경제의 명운이 달린 만큼 치열하고 혹독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관세 쇼크를 수출 및 납품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중소기업 수는 804만2726개사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 중 차지하는 비중은 99.9%에 달한다. 수출 중소기업 수는 약 9만5905개사다. 이들이 흔들린다는 건 우리 경제의 근간이 휘청인다는 의미다. 단순히 중소기업의 수출 판로를 키우기보다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수출 의존도를 분산시키는 등 구조를 다변화해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낮춰야 한다.
미국이 약 100년 전에 겪은 '스무트-홀리법'의 후폭풍도 고려해야 한다. 1929년 5월 미국 하원에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법이 통과됐다. 이는 불황을 대공황으로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무역 협상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관세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나 물가 상승이 하반기에 현실화할 경우 자산가격이 빠르게 조정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새 정부, 새 장관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인구 감소 등 구조적 위기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AI 기술 내재화와 리스크 관리 컨설팅 등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이 '고속도로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 '고속도로론'의 실행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