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법차별 종식과 능력 기반 기회의 회복’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 14173을 발표했다. 소수자를 우대하고 성별 출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기존의 행정명령(11246)을 철폐하고, 철저한 능력중심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이제 “다양성을 고려한 채용 또는 승진 프로그램을 더 이상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내 확산된 반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다.
전 세계에 ESG 열풍을 몰고왔던 자본시장의 대부 블랙록도 “ESG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이러한 논의에 화답하는 듯 보였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LBS)에서는 ‘ESG의 종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ESG 안티 정서에 불을 지폈다. 많은 ESG 업계 종사자들이 “이제 ESG 시대는 끝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그동안 추진되어 왔던 지속가능보고서 의무공시 로드맵 발표는 미뤄지고, 국내 ESG를 선도하는 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조직을 줄이거나 축소하는 소식들을 접하며 이러한 정서는 더욱 굳어져만 갔다.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ESG는 끝나지 않았다”. ESG의 ‘실행 속도와 방식이 재정의’ 될 뿐이다. 먼저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트렌드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정책 기조로 화석연료산업 성장, 재생에너지 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하고 ‘연방정부 계약업체들’을 중심으로 DEI와 ESG 투자가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탄소를 무역규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청정경쟁법(CCA), 해외오염관세법(FPFA)과 같은 미국판 탄소국경세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 환경 이슈의 완전한 위축으로 볼 수는 없다. 미국산 제품보다 CO2 배출집약도가 높은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와 관세를 통한 세수 확보에 부합하고 무엇보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본격적인 추진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성 규제를 간소화하고 중견 중소업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옴니버스 패키지를 도입해서 공급망 실사 기준을 완화했지만, 기업들에 자율성을 주되 법령과 가이드라인상 정해진 범위 내에서 ‘실행력 강화’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의 움직임을 보자. 블랙록은 ESG라는 막연한 용어 대신 “전환기 투자”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히며 청정에너지 등 기후변화에 여전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JP모건의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고객으로부터 존중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어어 나가는 것”이라면서, “기후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기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깨어 있는 척하는(Woke)”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의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논문도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ESG는 중요한 지표다.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며 “ESG를 투자기준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ESG를 특별한 테마로 볼 것이 아니라 투자와 통합된 자연스러운 ‘비즈니스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ESG는 ‘지속가능성’ 추구의 일환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사정은 사뭇 다르다. 재생에너지 전환 및 인프라 구축, 산업구조의 저탄소 전환 등 환경친화의 정책 기조, 대통령이 직접 기업의 산업안전 재해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를 챙기는 사회 분야의 인권 이슈 대두,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익 강화와 이에 대응하는 경영권 보호 법안들이 자본시장에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ESG 실행 속도와 추진 방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키워드는 ‘지속가능성’과 실질적인 ‘실행력 강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