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KDI가 ‘경기 둔화’를 공식 언급한 가운데 1분기 ‘역성장 쇼크’에서는 벗어났지만, 반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도 추경과 소비쿠폰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미국발 관세, 보호무역주의 확산, 공급망 재편 등 대외 통상환경이 녹록지 않다. 씨티은행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마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 이내로 낮춰 잡았다. 단순한 경기침체를 넘어 경제성장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동력은 산업 R&D였다. 1980년대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은 4M DRAM을 시작으로 ‘Made in Korea’를 알렸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수년간 지켜왔다.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도 꾸준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산업 현장의 기술 난제를 풀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온 산업 R&D는 대한민국 성장의 실체이자 주역이었다. 해외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CATL, 론지솔라, 화웨이 등 세계 1위 기업을 키워내며 제조 강국이 되었고, 미국은 우주항공, 첨단제조 R&D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일본도 디지털 전환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안간힘이다. 전 세계는 산업 R&D를 앞세운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지금 대한민국 R&D는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할 시점이다. 기술 자립과 인력양성을 위해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대한민국은 산업 현장에서 출발해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산업원천 기술’ 확보에 국가 존망이 걸려 있다. ‘K-R&D’의 핵심은 산업 R&D다. 더는 우리의 강점을 외면하고, 가야 할 길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산업 R&D의 현실은 위기다.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기초연구와 산업 R&D 간 예산 격차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산업 R&D 투자는 정체되고, 기초투자가 가파르게 늘면서 그 격차는 거의 두 배로 벌어졌다. 불균형이 고착화된 2010년대 이후, 신산업 출현이 정체되고 성장률은 3% 밑으로 떨어지며 경제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산업 R&D의 투자가 지지부진하면서 국가 성장의 동맥경화를 초래한 것이다.
이제는 낡은 틀을 깨고 R&D 체계의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새 정부는 R&D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설계해, R&D의 근간이 되는 기초연구는 단절 없이 안정적으로 지원하되, 산업 R&D는 핵심기술을 기업에 공급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도 실리콘밸리의 우주방위, 에너지, 로봇 스타트업들과 협력하여 제조업 재건에 힘쓰고 있다. 대한민국도 기초역량은 꾸준히 키워 노벨급 성과를 이어지도록 하고, ‘산업 R&D’는 현장에서 절실한 원천기술을 조기 확보해 산업 전반에 핵심기술이 뿌리내리도록 ‘K-R&D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
둘째, 구태의연한 제조업 R&D만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기존 제조역량을 유지하면서, AI 융합 혁신에 나서야 한다. 예측 유지보수, CPS 시스템, 물류 자동화 등으로 제조 경쟁력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야 한다. 아울러, 데이터센터, 고연산 반도체, 엣지 컴퓨팅 등 제조 AI 전환의 R&D 기반을 촘촘히 구축해 산업 전반에 AI를 빠르게 확산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 R&D의 실행 역량을 키워야 한다. 최고의 대·중견·중소 기업이 ‘K-드림팀’을 구성해 선단형 R&D를 추진하도록 과감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 R&D 문화를 조성하고, 산업부의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처럼 혁신 DNA를 산업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도 ‘진짜 R&D’에 도전할 때가 왔다.
과거 우리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불가능해 보였던 산업화를 일궈냈다. 돌아갈 배를 불태우고, 솥을 깨뜨리는 절박함으로 산업 R&D에 매달렸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이제 다시 한번 ‘탈방(脫蚌)’의 각오로 위기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더욱 빛나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대한민국 R&D 전환의 골든타임이며, 침체의 경제를 다시 띄울 비상(飛上)의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