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경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애경산업의 매각가가 시장의 눈높이를 크게 웃돌면서 밸류에이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시가총액 4300억 원 수준의 애경산업에 대해 그룹 측은 약 6000억 원의 몸값을 기대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동종 업계 신흥 강자나 기존 대형사와의 격차를 고려할 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4342억 원 수준이다. 지난달 초 약 8개월 만에 4000억 원대를 회복했지만, 최근 상장한 화장품 기업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 모습이다. 지난해 상장한 달바글로벌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시가총액 2조4500억 원, 올해 상장한 에이피알은 6조3700억 원을 넘어섰다.
전통 강자들과의 간극도 뚜렷하다. 애경산업과 비견되는 아모레퍼시픽(7조6567억 원), LG생활건강(5조993억 원) 등은 중국 외 글로벌 시장에서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고급화 전략, 명확한 브랜드 피라미드를 통해 ‘K-뷰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끈다.
반면 애경산업은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저가 제품 중심의 라인업에 머물고 있으며, 매출의 약 70%가 중국 시장에 집중돼 있어 지역 분산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최근 부상한 신생 화장품 기업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직판 모델과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강력한 팬덤을 통해 단기간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애경산업은 유통구조나 브랜드 전략 면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오프라인 중심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낮은 브랜드 경쟁력과 사업 구조의 한계는 결국 매각가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는 애경산업의 현 수준에서 6000억 원대 기업가치를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경산업은 화장품 브랜드 ‘에이지 투웨니스’, ‘루나’와 생활용품 ‘2080’, ‘케라시스’ 등을 보유한 중견 기업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외 화장품 업계 내 위상은 과거보다 크게 약화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6000억 원은 투자자 입장에서 신사업 기대나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전제로 한 가격인데, 지금 애경산업이 그런 포지션에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시장경쟁력 차이는 실적과도 직결된다. 지난해 애경산업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468억 원으로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매출 역시 줄어들며 구조적인 성장 정체를 드러냈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은 프리미엄 라인과 북미 수출 호조에 힘입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에이피알과 달바글로벌은 매출과 이익이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닌 재무적투자자(FI)가 주축이 된 매각 구조 또한 시너지 관점에서 애경산업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게 만든다. 브랜드 재정비나 글로벌 확장 같은 후속 작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만으로 고밸류에이션(기업 가치)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번 매각이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SI)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인수 주체의 눈높이와 가치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만든다. SI는 단기 수익보다 브랜드 정체성과 본업과의 시너지를 중시하는 만큼, 애경산업의 시장 포지션과 사업 체질에서 확신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애경산업은 현재 태광그룹 컨소시엄(태광산업-티투프라이빗에쿼티),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폴캐피탈코리아 등 3곳 인수 적격후보(숏리스트)로 선정하고 실사를 진행 중이다. 이중 태광 컨소시엄 홀로 SI이며, 나머지는 FI로 분류된다. 본입찰은 다음 달 말로 예정됐으며, 매각주관사인 삼정KPMG는 잠재적 원매자들과 세부 협상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