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의 ‘7말 8초’ 극성수기. 대목을 잡으려는 국내 여행지들이 분주한데요. 그러나 본격적인 문을 열기도 전에 부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앞을 막아섰습니다. 바로 ‘불친절’과 ‘바가지’인데요. 아쉽게도 이런 말들은 낯설거나 놀랍지 않죠. 휴가철 국내 여행지에서는 마치 으레 따라붙는 그림자처럼 반복되어 온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행지의 배짱. 전남 여수, 경북 울릉도 등 주요 관광지에서 관광객의 분노를 부르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는데요.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는 피해 사례를 담은 영상과 후기, 리뷰들이 빠르게 퍼졌죠.
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인데요. 너무나 익숙한 탓이죠. 특정 업소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반복 주기가 너무 짧고 업종도 다양한데요. 최근 수년간의 사례만 돌이켜봐도 ‘팽배한 배짱’이란 비난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3일 유튜브 채널 ‘유난히 오늘’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큰 파문을 불러왔는데요. 혼자 백반집에 식사하러 간 여성 유튜버가 2인분 주문을 강요당한 것도 모자라 식당 관계자에게 “아가씨 하나만 오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있으면 무한정이잖아”, “예약 손님이 앉아야 한다”는 등 불쾌감 섞인 호통을 들어야 했죠. 이에 유튜버는 “들어온 지 20분밖에 안 됐다. 20분 만에 나가라니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식당 관계자는 “그래서요? 그냥 먹고 가면 되지”라고 맞서기까지 했는데요. 해당 유튜버는 떨리는 손을 뒤로하고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죠.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식당은 가게 입구에 자필 사과문을 붙이고 유튜버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습니다. 여수시 또한 즉각 실태 점검에 나섰는데요. 시는 5000여 개 업소에 1인 손님 응대 가이드를 배포하고 성수기 서비스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늦었다”는 여론만 맞닥뜨릴 뿐이었죠. 해당 업소는 과거에도 혼밥 손님을 거부했다는 리뷰가 여럿 있었고 그간의 문제는 방치됐던 셈입니다.


구독자 약 56만 명을 보유한 여행 유튜버 ‘꾸준’이 같은 달 올린 울릉도 여행기도 시끌시끌한데요. 삼겹살을 주문했더니 절반 이상이 비계로 구성돼 ‘사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따개비죽도 가격 대비 양과 질이 터무니없다는 반응이 뒤따랐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죠. 숙소에 도착하니 에어컨이 고장 나 있었는데 업주는 ‘원래 이 정도면 잘 나오는 거다’라고 응대하는 불친절함의 절정을 보여줬는데요. 사과 따윈 들을 수 없었습니다. 체크아웃도 애초 예약보다 1시간 일찍 통보받았다는 후기까지 더해졌죠.
유튜브 댓글에는 “여전히 외지인을 돈줄로만 본다”며 불만글이 쏟아졌는데요. 실제로 울릉도에서는 작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죠. 유튜버 ‘투깝이’가 백반 1인분에 7만 원을 요구받았고 항의하자 업주는 “여긴 울릉도다”라고 당연한 태도를 보여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부산 광안리에서는 여름 불꽃축제 시즌이 다가오자 일부 숙소가 하루 숙박료를 100만~200만 원까지 책정한 사례도 있는데요. 일부 업소는 예약된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하거나 현금 결제를 강요했다는 사례도 온라인에 잇달아 게재됐죠. 실제 숙박 예약 플랫폼에는 광안리 인근 숙소의 후기 중 ‘금액 바뀜’이나 ‘예약 취소 통보’ 관련 리뷰가 상당수인데요.

제주도에서는 2025년 벚꽃축제 기간에 순대볶음 6조각에 2만5000원을 받는 업소가 등장해 논란이 됐죠. 잔치국수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책정한 곳도 나왔는데요. 수년 전부터 ‘시가 메뉴’도 문제로 지적됐죠. 관광객이 메뉴판에 가격이 없는 갈치구이, 오분자기 뚝배기 등을 주문했다가 계산서에서 놀라는 경우가 반복됐습니다. 도는 ‘착한가격업소’ 제도와 사진 메뉴판 부착 캠페인을 실시 중이지만 소비자 체감은 아직 멀죠.
대표적인 여행지답게 제주도는 쌓여온 관광객 홀대 논란 직격탄을 맞는 중인데요. 24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17일 기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전년(744만4524명) 대비 6.1% 줄어든 698만7763명에 그쳤죠. 부정적 여론 확산이 제주 관광산업에 미친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관계자들이 평가가 잇따랐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사례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닙니다. 매년 여름, 장소만 바뀔 뿐 비슷한 구조의 문제는 끊이지 않죠. 왜 그럴까요? 먼저 관광객 대다수가 단기 체류자이며 재방문율이 낮아 일부 업소들이 장기 고객 확보보다 “한 번에 최대한 뽑자”는 단기 이익에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성수기에 연 매출 상당 부분이 집중되면서 가격 인상과 서비스 저하가 따라왔고요. 혼자 여행하는 손님이나 외지인을 ‘손해 보는 손님’으로 여기는 인식도 여전합니다. 거기다 지자체 단속과 캠페인은 사건 발생 후에야 본격화되는 등 대응이 사후적인 문제도 있죠.
그렇기에 여행객들이 연휴를 맞아 국내가 아닌 해외로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2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여행지 선호도는 국내여행이 39.0%, 해외여행이 38.4%로 집계됐는데요. 해외여행을 더 선호하는 이유를 묻자 ‘새롭고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서(39.1%)’와 ‘볼거리·관광명소가 다양해서(28.1%)’, ‘국내여행보다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아서(14.8%)’라는 대답이 높은 것만 봐도 미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물론 해외라고 바가지요금이 없다고 말할 수 없죠. 다만 억제 장치의 여부는 분명한 차이를 만듭니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 음식점과 숙박업소에서 정찰제 문화가 보편화돼 있죠. 메뉴판에 사진과 가격이 명확히 기재돼 있고 도시별 관광청이 서비스 가이드를 제공하며 불친절·과다 청구 발생 시 행정 조처를 합니다. 싱가포르는 바가지요금 적발 시 영업정지 또는 폐쇄 조처도 감행하는데요. 실제로 클락키 지역에서 외국인에게 칠리크랩을 과도하게 비싸게 판 업소가 퇴출당한 사례가 있죠.
매년 돌아오는 극성수기에 반갑지 않은 문제도 따라오는 불쾌감. “또 바가지 썼다”, “또 불친절했다”는 후기가 이어지는 한 국내 관광 사업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요. 여행지의 진정한 경쟁력은 ‘다시 찾고 싶은 경험’일 테죠. 바다는 여전히 예쁘고 산은 여전히 높지만 그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예전 같지 않은데요.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먼저 외면하는 국내 여행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