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대한항공·LIG넥스원과 맞손
4.1년 뒤쳐진 국방 AI 기술 끌어올릴 기회
트럼프 국방비 증액 요구와 맞닿아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 Industries)‘이 미국 내 무인 전장 플랫폼 시장 석권에 이어, 한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안두릴은 8월 서울에서 주한 미국 대사관 주관으로 안두릴 한국지사 설립 기념 행사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개회사를 하고 브라이언 쉼프 안두릴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도 참석할 예정이다. 안두릴은 한국 방산업체와도 잇따라 업무협약(MOU)를 맺으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시장 진출을 넘어, 한국의 무기 조달 전략에도 변화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두릴은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기업 ‘오큘러스’를 만든 천재 개발자 팔머 럭키가 2017년 설립한 방위산업체다. 기존 방산업체는 하드웨어·무기 시스템 중심이었다. 안두릴은 인공지능(AI), 자율비행, 실시간 전장 센서 융합 기술 등 민간 테크 기반을 바탕으로 전장을 디지털화하는 ‘풀스택(전방위적) 국방기술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의 주력 솔루션은 AI 기반 전장 통합 플랫폼 ‘Lattice(라티스)’다. 드론·자율 요격기·지상센서·수중 감시 장비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이 플랫폼에 연결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자동으로 대응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미 해군, 호주 해군, 영국 국방부 등이 이미 이 기술을 채택해 작전에 활용 중이다.
안두릴은 ‘방산계 테슬라’로 불릴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2년 시리즈 E 투자 유치 당시 기업가치는 85억 달러(한화 약 11조8000억 원)로 평가 받았다. 제너럴 카탈리스트 등 실리콘밸리 대형 밴처캐피털(VC)이 대거 참여했다. 지난 2월에는 기업가치가 280억 달러(약 40조 원)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한해 방위예산은 8500억 원(1231조 원)에 이른다. 안두릴, 팔란티어 등 IT 기반 미국 신생 방위산업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짜 미국 국방부 사업 수주에 뛰어들며 록히드마틴, 보잉 등 전통 방산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2025년 3월에는 미 해병대 시스템사령부와 6억4220만 달러(약 8926억 원) 규모의 무인기 요격 시스템 구축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10년간 기지 방어 체계 전체를 설치·운용·유지보수까지 담당하는 장기 수주다. 호주 해군과는 2022년 ‘고스트 샤크’ 자율 무인잠수정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영국 국방부와도 국경 감시, 전장 AI 시스템 계약을 체결했다.

안두릴은 한국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안두릴은 서울에 공식 법인 ‘안두릴 인더스트리즈코리아’를 4월 설립했다. 안두릴은 영국, 호주에도 법인이 있는데 한국 법인은 아시아 지역 최초다. 안두릴은 대만 타이페이에서 채용 공고를 내며, 대만 진출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달 안두릴은 방위사업청과 첨단 무인체계 공동개발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방사청의 국제 공동개발 MOU 체결은 2023년 보잉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HD현대·대한항공·LIG넥스원도 각각 안두릴과 기술협력 MOU를 맺고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섰다.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한국은 전세계 무기 수입국 중 12위에 올랐다. 특히 한국은 미국산 무기 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한국 수입 무기 86%가 미국산이다. 안두릴은 한국 방산업체의 협력을 통해 한반도형 전장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한국을 거점으로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수출 모델을 확장하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 분야 AI 기술 격차는 주요국보다 4.1년 뒤처져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안두릴과 손을 잡으면 K방산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을 상대로 국방비를 늘리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이는 곧 미국산 첨단 무기의 추가 도입 압박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연관, 미국산 초고가 감시 장비를 구매하라는 요구가 커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안두릴의 한국 진출과 현지화 전략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