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공급망 예상보다 견실
중동 석유 등 특정 원자재 휘둘리지 않는 것도 원인
공격적인 정부 재정지출도 충격 견디게 해
금리 상승·대만 침공 등은 위험 요소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문제,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이어지는 ‘폴리크리아시스’(다중복합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세계 경제는 큰 흔들림 없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세계 경제는 연평균 약 3%의 성장률을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여러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인해 발생한 2012년의 유로존 위기,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6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세계 경제는 3%의 성장세를 유지했다고 짚으며 여러 위기에도 경제가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예외적이었던 경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으로 이 해에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약 마이너스(–) 3%를 기록했지만, 이 역시 2021년에 6% 넘게 급등했고 이후 2년간 2% 이상의 성장률을 이어가며 큰 틀에서의 세계 경제는 이전처럼 성장세를 이어갔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대침체’를 염려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론 1920년대의 대공황과 유사한 일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예상보다 취약하지 않은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이 수입한 3만3000여 품목을 분석해 발표한 공급망 압박 지수(글로벌 공급망의 어려움을 측정하는 지표)에 따르면 트럼프발 무역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 순간에도 공급망 병목 현상은 장기 평균 수준을 나타냈다.
매년 수입 가격이 20% 이상 상승하고 수입량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한 품목의 수를 집계하는 방식인데 뉴욕 연은은 조사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공급망 병목 현상은 감소 추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세계 경제가 중동 석유 등 특정 원자재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안정적인 성장률을 보이는 이유로 지목된다. 세계 경제가 더는 1973년의 오일 쇼크 때처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특정 집단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었고 1973년 대비 현재의 석유 집약도(경제 생산 단위당 사용하는 석유량 측정 지표)가 60% 이상 감소했다.
이처럼 낮아진 석유 의존도와 공급처 다변화로 인해 최근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후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조치 등에도 세계 경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것 역시 세계 경제가 침체하지 않는 주요 이유로 꼽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구제 금융에 지출했고, 2022년 유럽에 에너지 위기가 왔을 때 유럽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3%를 추가로 지출했다. 경제 위기가 감지되면 재정 지출 확대로 위기를 넘어간 셈이다.
앞으로도 세계 경제는 큰 위기 없이 연평균 성장률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코노미스트는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향후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각국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미 미국 정부는 올해에만 GDP의 3% 넘는 금액을 부채 상환에 지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초월하는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위험 요소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고성능 첨단 반도체 수급이 하루아침에 중단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어 장기적인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