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금융위도 ‘개편안’ 반대…권한 놓고 충돌
수장 공백 한 달 넘게 지속…정책 리더십 마비 우려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둘러싼 금융당국 간 권한 다툼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정책 효율성’을 명분으로 미시건전성 감독 권한 확보를 공식 요구하면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 주도권 경쟁에 기름을 부었다. 금융조직 개편 추진 속에 금융당국 수장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권한 재편 구도는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거시건전성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과 비은행 자료 요구권 등 미시건전성 감독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한은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LTV(담보인정비율), 경기대응완충자본, 유동성커버리지비율 등 주요 규제 항목의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과 비은행권 자료 요구권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은의 이 같은 요구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보유했던 은행감독권 복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설립 초기 은행감독부로 출발해 1961년 ‘은행감독원’ 체제로 감독권을 행사했으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금감원으로 감독 기능이 일원화되며 검사 권한을 잃었다. 현재 한은은 금감원에 금융기관 검사나 공동 검사를 요구할 수만 있을 뿐 단독으로 검사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통화금융저널(JIMF)과 함께 주최한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한은은 주요국과 달리 직접적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과 미시감독 권한을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조율 과정에서 정책 강도나 방향에 이견이 있으면 정책 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중앙은행의 거시건전성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적 장치를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검사권 부활’ 요구는 정부가 준비 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안과 맞물려 권한 재편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해 일원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가칭)을 설립하는 시나리오도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감독권은 분산보다 집중이 효율적'이라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방문해 “검사·감독·제재의 책임 일원화가 필요하다”며 금소원 분리 구상에 대한 반대 논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소처가 검사 권한 없이도 협업을 통해 실질적 피해구제를 해왔는데 조직이 분리되면 집행력 없는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도 금융정책 기능의 기재부 이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위는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며 ‘6·27 대출 규제’가 대통령실 지시 이틀 만에 시행된 사례를 들어 정책 기획과 집행의 일체 운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각 기관이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권한 확보에 집중하는 사이 금융당국 수장 공백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지난달 5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지만, 후임 인선이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 6·3 대선 직후 사의를 표명한 김병환 금융위원장에 대한 후임 인선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차관급인 금융위 부위원장 자리 역시 지난 5월 임기 만료 이후 한 달 넘게 공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직개편 논의가 길어질수록 수장 인선도 미뤄지고 감독체계는 실질적 공백 상태로 방치될 수 있다”며 “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개편 논의와 인사를 분리해 신속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