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또다시 일본에 무릎을 꿇으며 동아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안방에서 내줬다. 한일전 3연패라는 불명예 기록도 함께였다.
한국은 15일 오후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 남자부 최종전에서 일본에 0-1로 패했다. 전반 8분 저메인 료에게 허용한 선제 실점이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2승 1패(승점 6)에 그치며 3전 전승(승점 9)을 거둔 일본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국이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에 패하며 우승컵을 놓친 건 2회 연속이다. 통산 6번째 정상 도전에 실패한 한국은 여전히 5회 우승으로 대회 최다 우승국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최근 흐름에서는 일본에 완연히 밀리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이날 패배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첫 한일전 3연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2021년 3월 요코하마 평가전(0-3), 2022년 7월 나고야 동아시안컵(0-3)에 이어 이날까지 3연속 무득점 패배였다. 최근 10차례 한일전 성적도 2승 3무 5패로 역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마지막 승리는 2019년 부산 대회(1-0)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반 초반은 극명한 희비가 엇갈렸다. 전반 7분 나상호(마치다 젤비아)가 왼쪽 측면을 돌파해 오른발 땅볼 슈팅을 시도했지만 공은 일본 골키퍼 손끝을 맞고 오른쪽 골대를 강타하고 나왔다. 찬스를 놓친 직후 곧장 일본의 반격이 이어졌다. 1분 뒤 미야시로 다이세이의 크로스를 저메인 료가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홍콩전에서만 4골을 몰아넣은 료는 한국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대회 5호골을 완성했다. 그는 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했다.
한국은 이후 이호재(포항), 오세훈(마치다), 문선민(서울), 강상윤(전북) 등을 연이어 투입하며 반격에 나섰다. 점유율 58%-42%, 슈팅수 9-4로 일본을 압도하며 후반에는 완전히 경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력이 부족했다. 가장 아쉬운 장면은 후반 39분 오세훈이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이호재가 시저스킥으로 연결했지만 일본 골키퍼 오사코 게이스케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은 “양 팀을 놓고 보면 우리가 더 잘했다. 일본은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며 패배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어 “우리 선수들은 희망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를 통해 국내파 자원들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스리백도 잘 수행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도 패배를 인정하기 어려운 팬들의 시선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었다.
주장 조현우(울산)는 자책했다. 그는 “손이 닿지 않은 슈팅이었지만 내가 막았어야 했다. 실점 후 수비진 리드도 부족했다”며 책임을 돌렸다. 앞선 2021·2022 한일전에서도 실점을 허용했던 그는 “3연패가 너무 아프다.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관중석 풍경도 낯설었다. 한일전이라는 매치업 덕에 이날은 1만 8418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며 대회 최다 입장 기록을 세웠지만 일본 원정 응원단 '울트라 니뽄'의 열기가 더 뜨거웠다. 대형 일장기와 파란 응원봉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함성도 한국보다 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국내 응원단 '붉은악마'의 규모는 오히려 절반 수준이었다.
한편 일본은 2013년 대회 이후 12년 만에 한국 땅에서 다시 우승 세리머니를 펼쳤다. 당시도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시기였다. 대회 역사상 한국 안방에서 일본이 우승한 건 두 번째지만 두 번 모두 홍 감독 체제였다.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일본과의 최종전 패배로 우승을 놓쳤다.
개인상도 대부분 일본의 몫이었다. 대회 MVP이자 득점왕은 저메인 료, 골키퍼상은 오사코 게이스케가 가져갔고, 한국 선수 중에는 김문환(대전하나시티즌)이 유일하게 베스트 수비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형평성 배려’라는 냉소적 평가가 나왔다.
동아시안컵은 FIFA A매치 캘린더 외 대회로, 유럽파 차출이 불가능하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주축은 빠졌고 양국 모두 리그 기반의 국내파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대표팀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구성된 3군에 가까운 팀으로 한국을 꺾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손흥민이 없었다”는 변명도 설득력을 잃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홍명보호는 국내파 중 일부 자원의 경쟁력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에 패한 ‘홈 들러리’라는 씁쓸한 성적표만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