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의 미국 공략에…K철강 ‘삼중고’ 우려

일본 정부가 수십 년간 침체된 조선·철강 산업 재건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조선업을 정면 겨냥하고, 동시에 조선업을 미국과의 관세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K-산업계 전반에 경계심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최대 조선업체 이마바리조선은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지분을 기존 30%에서 60%로 확대해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했다. 경쟁 관계였던 두 조선사의 합병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합병을 통해 이마바리조선은 세계 선박 건조량 순위가 기존 6위에서 4위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중국선박공업집단(CSCC)과 HD현대, 삼성중공업의 뒤를 잇는 규모다.
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약 1조 엔(한화 약 70억 달러) 규모의 민관기금을 조성해 국영 조선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해당 조선소는 정부가 건설한 후 민간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기업 설비투자 부담은 줄이는 대신 시설은 현대화를 도모해 조선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철강 부문에서는 일본제철이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제철은 지난해 미국 철강업체 US스틸 인수를 발표했다.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제철은 US스틸에 2028년까지 총 110억 달러(약 15조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또 미국 내 조강 생산량을 10년 내 2000만 톤(t) 이상으로 늘려 세계 1위 조강 생산량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수립했다.
일본이 조선·철강 산업계의 몸집 불리기에 나선 건 두 산업군을 재활성화하지 않은 채 방치할 경우 조선업에서 일본의 위치를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때 세계 최대 조선업과 철강업을 자랑하던 일본은 한국의 조선업 기술과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에 밀려 주도권을 잃었다. 수십 년간 침체했던 전통 제조업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다시 끌어올려 글로벌 산업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조선 산업의 위기가 일본의 해운 물류, 경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 역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당장의 위협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인 압박 가능성에 대해선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기류도 엿보인다.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조선업을 협상수단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나오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국내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 역시 더 세질 수 있어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이미 기술력과 대량 수주 능력 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일본이 단기간 내에 앞서기는 어렵다”면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자금력과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면 장기적으로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제찰의 US스틸 인수로 국내 철강업체들이 대미 수출 경쟁에서 위협을 받을 수 있어서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더불어 미국 관세 리스크, 일본발(發) 압박까지 삼중고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