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여름의 냉기가 피어오르는 이상한 영화

입력 2025-07-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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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신작⋯'퀴어' 2만 관객 돌파

▲영화 '퀴어' 스틸컷 (㈜누리픽쳐스)
▲영화 '퀴어' 스틸컷 (㈜누리픽쳐스)

사랑하는 사람은 집과 유사하다. 물리적·정서적 안식처가 선사하는 평온의 감각이 집과 연인에게 있다. 동시에 소파 밑, 침대 틈새, 베란다 귀퉁이처럼 집의 사각지대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장소이자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연인은 모종의 타자성을 내포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불현듯 상대의 내면에 감춰진 침묵의 공간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너무도 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 ‘퀴어’는 평온과 불안, 익숙함과 낯섦, 안정과 긴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자 운동을 하는 사랑의 이중성을 말하는 영화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S. 버로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늙은 퀴어의 고독과 욕망을 전면화한다.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 글을 쓰고,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장소를 전전하던 버로스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영화에서 작가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멕시코시티의 밤거리를 쏘다니며 젊은 남자들을 탐닉한다. 그러던 중 신비로운 느낌의 앨러턴(드류 스타키)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앨러턴은 리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사람처럼 보인다. 앨러턴을 바라보는 리의 눈동자에는 욕망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리는 앨러턴의 일상과 취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신문사에서 단기 근무를 하는 그의 직업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그저 앨러턴의 육체를 강렬히 원할 뿐이다.

영화는 철저히 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아름다운 청년 앨러턴은 시종일관 대상화된다. 그 과정에서 리는 앨러턴이 퀴어인지 아닌지 계속 의심하며 그의 정체성을 저울질한다. 리는 앨러턴과의 잠자리 후에도 확신을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리가 앨러턴을 교감과 소통의 대상이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리의 자기중심적 욕망과 프레임은 앨러턴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설명할 공간을 선사하지 않는다.

▲영화 '퀴어' 스틸컷 (㈜누리픽쳐스)
▲영화 '퀴어' 스틸컷 (㈜누리픽쳐스)

적어도 리에게 앨러턴은 쉽게 해석할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죽은 공간’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원래 앨러턴이 그런 사람이라기보다는 리의 일방적인 시점 속에서 점점 실체를 잃고, 해석 불가능한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게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반대로 앨러턴 입장에서 리는 어떤 존재일까. 리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앨러턴은 거실에 놓인 책더미와 타자기를 보고 그가 작가임을 직감하며 잔잔한 미소를 보인다. 그러나 곧 마약을 하는 듯한 도구를 발견하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마약에 중독된 삶을 살아가고, 술주정을 부리며, 자신의 육체만 탐하는 듯한 리를 앨러턴이 점점 멀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컨대 사랑의 감정은 육체가 아닌 상대가 살아온 역사로부터 기인한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가 쌓아 올린 시간이 나에게 전이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라는 흔한 로맨스 영화 속 대사는 사랑의 본질이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상대의 역사와 타자성, 취향 그 자체를 끌어안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 리와 앨러턴은 서로에게 그런 사랑이 아니었던 셈이다.

영화 후반부, 리는 생각을 조종한다는 불가사의한 식물 ‘야헤’를 찾아 남미의 정글로 떠난다. 텔레파시를 통해 앨러턴을 통제하고 싶어서다. 야헤를 먹고 두 사람이 벌거벗은 채 서로의 몸에 접속하는 듯한 안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환상적인 순간이다. 동시에 앨러턴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 리의 욕망이 현실화한 순간이자 그것이 진정한 합일인지, 편향된 욕망의 결과물인지 질문을 남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포개고 싶었던 늙은 퀴어의 삶은 측은한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말없이 가능한 소통, 침묵 속의 이해,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원했던 리. 그는 과거 앨러턴이 불현듯 내어주었던 한쪽 다리의 온기를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듯 눈을 감는다. 여름의 냉기와 겨울의 열기처럼, 모순된 계절감이 충돌하는 듯한 이 이상한 영화는 퀴어의 내면을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게 그려낸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퀴어’는 현재까지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감독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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