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고액자산가 전용 아닌 대중 금융으로”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초과하면서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은퇴 후 안정적인 소득 확보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소액신탁에 과감한 세제 지원을 부여해 대중 금융상품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간한 ‘신탁 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구성원이 포함된 고령 가구의 총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8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 연구위원은 “고령화로 인한 치매 환자 증가, 상속 분쟁 등을 고려할 때 은퇴 이후의 안정적 수입 확보와 재산 관리, 원만한 상속을 위한 금융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97만 명,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29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신탁은 재산을 믿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에게 맡겨 대신 관리하거나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내 신탁 시장은 여전히 고액자산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일반 대중의 접근성이 낮다. 서 연구위원은 “중산층을 위한 소액 신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탁에 세제 혜택을 결합한 다양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교육자금증여신탁과 결혼·육아자금신탁이다. 일본에서는 30세 미만의 자녀나 손주에게 교육자금증여신탁을 활용해 일시금으로 자산을 증여할 경우, 최대 1500만 엔(약 1억 3500만 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결혼·육아자금신탁 역시 18세 이상 50세 미만의 직계비속에게 결혼·출산·양육 자금을 신탁 방식으로 일괄 증여할 경우, 최대 1000만 엔(약 9000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교육자금·치매간병·유언대용신탁 등 목적성 신탁에 대해 일정 한도 내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며 “신탁의 사회적 기능을 살려 중산층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2022년 ‘신탁업 혁신 방안’을 통해 관련 제도 정비를 예고한 바 있으나 아직 실질적인 법제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안에는 현재 자본시장법 제103조에 신탁 가능 재산으로 열거된 금전, 증권, 금융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 이외에 채무(debt) 및 담보권 등을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탁 가능 재산에 채무를 포함시켜 고령층이 잔여채무(주담대)가 포함된 주택도 신탁을 통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신탁된 주택으로도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보고서는 △신탁 가능 재산의 확대 △복지신탁 활성화 △온라인 기반 신탁 서비스 허용 △고객군 맞춤형 신탁 서비스 제공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이 신탁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디지털 전환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