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서 AI를 활용하는 시장은 2024년 18억6000만 달러(약 2조5000억 원)에서 연평균 29.9% 성장해 2029년에는 68억9000만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기술에 대한 투자가 늘고 환자 맞춤형 의약품과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시장이 자연스럽게 불어나는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신약 개발 과정에는 최소 10년의 기간과 평균 1조~2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됐다. 문제는 막대한 시간과 돈을 써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단 점이다. 실제로 상업화되는 신약은 1만 개의 후보물질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AI를 적용하면 시간과 돈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오차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약물 디자인, 약물 스크리닝, 약물 재창출, 다중 약리학, 화학 합성 등 신약 개발의 다양한 분야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바이오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하던 AI 신약 개발은 글로벌 빅파마로 옮겨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최근 중국 CSPC 파마슈티컬과 약 50억 달러 규모의 AI 신약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화이자는 자체 AI 플랫폼을 구축해 19개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적용했고, 일라이 릴리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AI 책임자를 임명했다.
주요국에서는 AI로 동물실험을 대체하려는 시도도 적극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단클론항체 및 기타 약물 개발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안 중 하나로 AI를 제시했다. AI 기반 계산 모델로 약물의 독성을 예측해 윤리적 이슈를 해결하고 연구개발(R&D) 비용 절감 효과까지 챙길 수 있단 것이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만큼 AI를 통한 신약 개발의 길은 아직 멀다. 미국 바이오기업 리커전은 AI로 발굴한 뇌혈관 기형 치료제 ‘REC-994’의 임상 2상에서 고용량을 투약한 환자의 뇌 병변이 50% 줄어들었다는 데이터를 올해 2월 발표해 최초의 뇌혈관 기형 신약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임상 성공의 필수 조건인 통계적 유의성은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5월 리커전은 1분기에만 약 2억 달러(약 27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발생했다는 실적 발표와 함께 해당 파이프라인의 구조조정을 선언하며 실패를 인정했다. AI 신약개발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이 회사는 엔비디아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시가총액이 한때 4조 원을 넘어서는 등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만 높은 허들을 넘지 못한 것이다.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약속된 성장성에 매료된 국내 기업들은 AI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자체 신약을 개발하는 파로스아이바이오, 온코크로스나 플랫폼 기술을 제공하는 신테카바이오와 같은 바이오기업은 물론 JW중외제약, 대웅제약 등 전통 제약사들도 포함된다.
이런 국내 업계의 노력은 AI 신약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하겠단 뜻을 강조한 새 정부를 만나 꽃을 피울지 주목된다. 정부는 AI 설계 기반 기술을 활용해 항체의약품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AI 신약의 전임상 및 임상 설계·지원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55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국회에 요청하는 등 의지를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