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서 실업자 흡수…제조업 고용유지

“우크라이나판 진주만 공습이다.”
지난달 1일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전선에서 4300㎞ 이상 떨어진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벨라야 등 공군기지 4곳을 집중공격했다. 이 공격은 러시아의 장거리 폭격기 Tu-95와 Tu-160 등 군용기 40여 대를 격파했다고 우크라이나는 밝혔다.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하던 전략 폭격기다. 러시아의 한 군사 블로거는 기습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비교하며 허를 찔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략한 지 3년 4개월이 더 지났다. 아직도 휴전은 불투명하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제한전에 미국도 일부 가세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린다. 병력과 무기 면에서 매우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은 고군분투 중이지만 드론전에서는 러시아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독일의 방산벤처업체가 이 드론전쟁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치중해있던 독일 제조업이 방산으로 변신 중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인공지능.” 독일 뮌헨에 위치한 헬징의 구호다. 2021년 설립된 헬징은 처음에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제작했으나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전투용 드론 제작사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HX-2 전투 드론을 우크라이나와 6000대 판매키로 계약을 체결했고 최근 월 1000대 생산이 가능한 공장도 준공했다.
전투 드론은 사거리가 100km 정도이고 최대 시속은 220km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12kg 정도로 탱크나 건물을 파괴하는 폭탄을 싣고 적진으로 들어가 정밀폭격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수십 대 드론을 조종해 합동 공격도 가능하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의 대전차 휴대용 지대지 미사일 재블린이 한 기에 약 20만 달러, 2억6000만 원 정도다. HX-2는 이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아군의 피해도 크게 줄이며 적을 타격할 수 있다.
창업자 토어스텐 라일(Torsten Reil)은 유럽 벤처업계에서 유명하다.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로 억만장자가 된 그는 2014년 2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유럽의 안보 위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웨덴의 스트리밍업체 스포티파이의 창업자 다니엘 에크도 이에 공감해 2021년 헬징 창사 때 1억 유로, 약 1500억 원 정도를 투자했다. 당시 스포티파이 주주들은 왜 방산업체에 투자하냐며 에크를 강력하게 비판하거나 일부는 투자를 유보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자 라일도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안목은 정확했다. 다른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유럽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채고 필요한 투자를 감행했다. 올해 기업평가 가치는 120억 유로, 약 18조 원 정도로 1년 만에 2.4배 급증했다. 라일 최고경영자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초기의 비판을 언급하며 “민주주의 국가에만 제품을 판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에 개발 중인 AI 전투기 조종사가 모의 전투에서 인간 조종사보다 우수하다고 소개하며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 전쟁은 점점 더 물자의 싸움인데 이게 사상자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독일의 다른 중소기업들도 헬징처럼 변신을 도모 중이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 독일 경제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중소기업을 일컫는 독일어다. 전체 기업 가운데 99% 정도가 미텔슈탄트이고 100년이 넘게 가업을 이어온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지멘스나 바스프(BASF), BMW처럼 독일 대기업에 익숙한 우리에게 중소기업 비중 99%는 놀랍다.
쾰른 소재 엔진제조사 도이츠(Deutz)는 설립된 지 161년 됐다. 2024년 매출은 20억 유로. 지난해 처음으로 방산 제품 매출이 전체의 2%를 차지했다. 영하 20도에서도 작동하는 엔진을 만들었던 기업이어서 군사용 제품을 만드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반면에 내부 시선이 곱지 않다. 2차대전의 업보 때문에 독일 미텔슈탄트들은 되도록 방산제품을 만들지 않았다. 방산 매출이 점차 늘어나지만 아직도 도이츠의 내부 분위기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바이에른 소재 화학회사 알츠켐(Alzchem)도 유사하다. 살충제 제조에 들어가는 니트로구아니딘(Nitroguanidine)은 폭약 성분이다. 이 성분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요가 폭증한 155mm 포탄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으로부터 1억5000만 유로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알츠켐은 내년에 방산이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
2020년 코로나19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후 독일 제조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자동차는 구조조정에 시달렸다. 자체 생산한 2차전지와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국산 BYD 전기차 공세에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제1 방산업체 라인메탈도 전쟁 발발 전에 자동차 부품 생산라인이 있었으나 전쟁 후 이를 폐쇄하고 무기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라인메탈은 부품업체 보쉬와 콘티넨탈에서 일자리를 잃은 자동차사 근로자 300명을 재고용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월부터 1년간 독일의 금속과 자동차 산업에서 약 3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보기술과 우주항공 및 방산업이 같은 수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독일이 19% 정도로 우리 25%와 견줘 낮다. 하지만 선진국 가운데 제조업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이 가운데 독일 자동차산업은 직접 고용만 해도 80만 명이 넘어 전체 제조업의 24%를 차지했다.
전쟁이 독일 제조업의 지형을 점차 바꿔놓고 있다. 지난달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에서 32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현재의 2%에서 5%로 높이기로 합의했다. 최소한 몇 년간은 방산업체의 호황이 예상되며 이 분야로의 인력이동도 급증할 듯하다.
반면에 전쟁의 업보로 평화주의 뿌리가 깊은 독일이기에 방산업체의 호황에 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도 지속될 듯하다.
하지만 로마의 속담에서도 말하듯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방산업, 특히 헬징과 같은 방산벤처사가 최소한 몇 년간은 더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