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자(합성의약품) 강세 속 고분자(바이오의약품)도 부상

인공지능(AI)이 신약개발의 전 주기에 적용되는 시대가 열렸다. 분자 설계부터 후보물질 도출, 임상 가능성 예측까지 AI가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같은 AI 기술이라도 모든 신약개발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후보물질이 어떤 분자인지에 따라 기술의 적용 범위와 한계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다른 개발 전략이 요구된다.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I 신약개발은 크게 저분자와 고분자 의약품에 따라 활용 방식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기술이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확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효율성은 분자의 크기와 구조, 작용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의약품은 분자의 크기와 특성에 따라 크게 저분자 의약품과 고분자 의약품으로 나뉜다. 두 의약품은 개발 방식과 작용 원리, 투여 방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저분자 의약품은 주로 화학 합성으로 생산된다. 분자 크기가 500달톤 이하로 작아 체내 흡수와 이동이 용이하며 주로 경구용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복용한다.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 등이 대표적인 저분자 의약품이다. 생산 공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비용도 낮아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반면 고분자 의약품은 단백질, 항체, 펩타이드 등 생물학적 물질로 구성돼 분자 크기가 수천에서 수백만 달톤에 이른다. 주로 세포나 미생물을 이용한 공정을 통해 생산되며 경구 투여가 어려워 대부분 주사제로 사용된다. 고분자 의약품은 면역항암제, 백신, 호르몬 치료제 등의 치료에 활용된다. 표적 특이성이 높지만, 생산과 보관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의약품 시장에서는 활용 범위와 생산 효율성 면에서 저분자 의약품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AI 기반 신약개발 기업 대부분은 저분자 의약품 중심의 파이프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AI 신약개발 기업인 미국의 리커전파마슈티컬을 비롯해 국내 AI 신약개발 상장사인 신테카바이오, 파로스아이바이오, 온코크로스 등도 저분자 신약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파로스아이바이오는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다. 자체 AI 플랫폼 케미버스로 개발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 후보물질 ‘PHI-101’의 글로벌 임상 1상 마무리를 앞두고 2상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발성 난소암으로 적응증을 확장해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저분자 의약품은 화학 합성 기반이어서 기존에 축적된 방대한 화합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조 생성, 물성 예측, 약물 최적화 등에 AI가 활용된다. 파로스아이바이오 관계자는 “저분자 의약품은 AI 기술과 궁합이 뛰어나 머신러닝이나 딥러닝 기반의 설계에 적합하다. 실험 데이터가 풍부해 학습 효율이 높고, 이는 개발 속도와 비용을 낮추며 임상 성공률까지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고분자 의약품 개발은 아직 일부 기업에서만 선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갤럭스정도가 단백질과 항체를 AI로 설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분자 의약품은 단백질 서열 분석, 항원-항체 간 상호작용 및 결합 예측, 면역원성, 안정성, 발현성 등의 예측을 중심으로 한 AI 기술이 적용된다. 그러나 단백질 서열과 구조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어렵고 설계 후 실험을 통한 검증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저분자보다 데이터 양과 질이 부족해 AI 개발의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다.
갤럭스 관계자는 “고분자 의약품은 질병 표적에 대한 높은 특이성으로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며 “단백질과 항체는 구조가 복잡하고 설계 난이도는 높지만, AI가 단백질 구조의 원리 등을 이해하도록 학습시키면, 적은 양의 데이터로도 정밀하고 정확한 설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AI 신약개발이 저분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고분자 의약품은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제약사들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분자 중심의 AI 신약개발도 점차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에는 저분자와 고분자를 결합한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에서 AI의 활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항체 서열과 페이로드 화합물, 링커 구조 등을 AI가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시도가 이뤄지면서, 두 분자 영역을 넘나드는 AI 기술이 신약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개발 시장은 2023년 9억27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에서 2028년 48억9360만 달러(약 6조6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