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일자리’ 창출 생활기반 다지고
지역대학 ‘인재양성’ 유기적 협력을

지역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은 텅 비어가고, 지방 도시는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속이 비어가고 있다. “왜 사람들이 떠나는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생활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도, 교육도, 문화도, 보건도 모두 부족하다. 병원 하나, 약국 하나조차 없는 마을에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결국 지역 주민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서울과 수도권, 혹은 인근 대도시로 떠난다. 그것은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고, 지방의 공동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제1차 인구감소지역 대응 기본계획’(2024)을 수립하고,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정주 여건 개선, 생활 인구 유입을 위한 43개의 세부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핵심은 여전히 빠져 있다. 구호는 요란하나, 정작 중요한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이 부족했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단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하고 싶게 만드는 조건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머무르고 돌아오고 들어오고’ 정책이 필요하다. 이 정책은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머무를 수 있는 이유, 돌아올 수 있는 동기, 새롭게 들어와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는다. 핵심은 지역민의 삶의 질 회복, 특히 양질의 지역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인구 순환 생태계 구축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단기와 중장기 과제를 구분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공공형·시장형 일자리를 지역대학과 연계해 창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생활 기반과 산업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RISE는 본래의 취지를 잃고, 단기 사업 위주의 예산 소진 방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지방정부, 산업계가 연계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전문성과 기획 역량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권을 쥐면서, 지역대학은 행정부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RISE는 ‘지방 살리기’가 아닌 ‘지방에서 돈 나눠주기’로 변질될 수 있다. 대학은 본래의 교육과 연구 기능을 상실한 채, 실적용 보고서 작성에 매몰된다. 이대로라면 지역대학은 정책 수행기관이 아니라 단순한 보조금 수령기관으로 전락할 뿐이다.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단기 사업 중심이 아닌, 중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고등교육과 노동시장 개입이 절실하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전국에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겠다는 이 전략은 기존의 ‘지방대 유지’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지역대학을 단순히 존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산업과 사회를 혁신하는 ‘지식 거점’으로 재편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지역별 핵심 대학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교육과 연구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해당 대학은 지역 산업과 연계해 기술과 인재를 공급하고, 동시에 지역 사회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 모델에 근거해야만, 지역대학은 ‘우수 인재’와 ‘좋은 일자리’ 생산지로 기능할 수 있다. 대학이 지역산업과 노동시장에 맞춘 인재를 양성하고, 창업과 연구개발의 중심지가 되면, 인구는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이는 단순한 인구 유지가 아니라, 지역 자립과 재생의 순환 구조를 만드는 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정책 설계 방식도 혁신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성과 중심의 예산 소진이 아니라, 정책 실명제 도입, 과정 중심의 평가 전환, 중앙과 지방의 공동 책임 구조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전략을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플랫폼의 임무를 수행하며, 대학은 자율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정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머무르고 돌아오고 들어오고’는 단순한 인구정책이 아니다. 이는 삶의 질을 회복하고, 지역이 다시 살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RISE의 구조적 재편과 함께,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고등교육 정책을 반드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야 한다.
지역은 지금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이대로 방관하면 공동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예산 지원이 아닌, 근본을 다시 설계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인구·교육·산업·일자리 정책의 유기적 결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