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신, 사이언스 그리고 머크 - 로이 바젤로스의 가장 미국적인 신약개발 이야기’는 로이 바젤로스의 자서전이다. 1929년 평범한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바젤로스라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로 여겨지기도 하는 1960년대 미국 과학계가 매일매일 놀라운 성취를 이뤄냈던 이야기, 그리고 같은 시기에 차별받던 흑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려 노력했던 미국의 보통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준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면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미국 기업들 가운데, 과학에 모든 것을 걸어 위기에서 벗어난 머크라는 제약기업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제약 산업의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던 정책적 실패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책은 바젤로스가 머크 CEO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약기업 가운데 한 곳인 머크 CEO에서 물러나자마자, 과학자로 돌아가 이제 막 시작한 작은 바이오텍에 뛰어든 이야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사를 따라가며 말썽꾸러기 소년 로이 바젤로스가 의사가 되었다가 과학자가 되고, 다시 기업의 세계로 뛰어들어 어려움을 뚫고 신약을 개발하며 기업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힌다. 바젤로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가족과 공동체, 인내와 노력, 성실과 도전이라는, 이제는 귀해진 가치들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책이 동화처럼 읽히게 하는 데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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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던 동료 연구자들이 하나둘 노벨상을 타고, 우여곡절 끝에 신약을 개발해 전 세계 최고의 제약기업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잘 짜인 한 편의 영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왜 미국에서 신약이 나오는지 물으면, ‘미국에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을 가진 제약기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이 돌아오고는 한다. 어떻게 미국 제약기업은 거대한 자본을 갖게 되었는지 물으면, ‘미국 제약기업은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신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질문과 답과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이런 분석에서 통찰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책을 따라가며 로이 바젤로스의 꽤 낭만적이었던 도전과 끊임없이 저지르는 실수, 그런데도 다시 도전하고 결국 매번 벽을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낭만과 열정의 밑바탕에는 가족과 사회와 공동체와 인류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라는, 너무나 뻔해서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무엇보다 강력해서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미국적이었고 여전히 인간적인 동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는, 가장 평범하지만 잊기 쉬운, 그래서 가장 위대할 수 있는 진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