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 제도화,
기업 부담 최소화해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인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횐경과 기업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기업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도 동반 추진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제21대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비대칭적 구조에 따른 전속거래 강요와 기술자료 요구, 부당 내부거래 등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 기술 탈취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대기업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부당한 지원을 집중적으로 심사하는 ‘계열사 지원 집중심사제’ 도입을 예고했다.
기업 간 공정한 거래 질서를 갖추는 일은 자본시장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시장은 기본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투자자가 만나 거래하는 곳이다. 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그러나 특정 기업이 부당하게 이익을 이전하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빼앗아 경쟁 구조를 왜곡하면 시장에는 불신이 확산할 수 있다.
예컨대 대기업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증시에 상장할 경우, 계열사의 실질적 경쟁력이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 등 지적재산이 보호받지 못하면 ‘기술특례상장’과 같은 제도를 기반으로 기업이 증시에서 자금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불공정거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 투자를 꺼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기업의 재무건전성뿐 아니라 기업 거버넌스와 시장 성격, 구조도 함께 고려해 투자한다. 한국 시장을 시장 참여자 간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보상이 보장되는 구조로 변화할 경우, 증시 저평가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된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 교수는 “경쟁력이 부족한 자회사의 기업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여 ‘엑시트(자금 회수)’하거나 모회사, 자회사 중복상장으로 모회사 주가가 할인돼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대기업 ‘문어발식 경영’에 따른 결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역시 대기업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촉진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ESG 공시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상장사 사업보고서나 반기보고서 등에 ESG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준비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ESG 경영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장 질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런 측면에서 상법 개정안 역시 넓은 의미에서 ESG 경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더불어민주당은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등을 통해 이사회 책임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다만 ESG 경영 법제화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하다. 먼저 환경, 사회와 같은 요소의 개념이 모호해 규정으로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ESG 경영으로 중장기 수익을 내기까지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와 이해가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ESG 공시부터 부담스러운 작업으로 다가올 수 있다. ESG 관련 데이터 수집, 공개에 필요한 시스템과 인력 마련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ESG 중에서도 지배구조와 같이 비교적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날 만한 지점부터 정부가 들여다보는 등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 교수는 “국내 증시가 저평가돼 일반주주 권익 보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 사회 부문까지 비슷한 강도로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 효과를 분산시킬 수 있다”며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개선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