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식재료 성질까지 고려한 한식, 입체적이고 깊은 요리
본연의 맛 지키되 글로벌 소통 중요...미쉐린 파인다이닝 꿈꿔”

외국인 관광객이 연일 북적이는 대한민국 서울 명동에 자리한 롯데호텔 서울. 이 호텔 최고층(38층)에는 국내 5성급 호텔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식당 ‘무궁화’가 있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최병석 롯데호텔 무궁화 총괄셰프는 1996년 롯데호텔앤리조트 조리팀에 입사한 이후 30년 가까이 롯데호텔에 근무하며 대한민국 한식과 K푸드의 진화를 지켜본 산 증인이다.
1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에서 만난 그는 “처음 호텔 식음업계에 발을 디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자연스레 한식도 해외 국빈들을 대접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K드라마와 K무비에 등장하는 갖가지 한국 음식에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이를 맛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스스로 한국을 찾고 있다. 평생 한식을 업으로 삼아온 최 셰프는 그간의 변화에 대해 격세지감이라는 반응이다. 최 총괄셰프는 “과거 한식은 격식만 높고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었다면 요즘에는 제대로 된 한식을 즐기려고 일부러 무궁화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최 총괄셰프가 요리를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결정적 계기도 ‘88 서울올림픽’ 때였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방한하면서 호텔 셰프들이 잇달아 언론에 등장했고 이를 보며 그도 호텔 조리사의 꿈을 키웠다. 드디어 롯데호텔 입사 후 첫 미션은 연회 한식과 국빈 행사였다. 한식이 대체 무슨 요리인지조차 모르던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했고, 국위선양을 위해 일종의 사명감을 가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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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범정부 차원에서 ‘한식의 세계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무궁화도 변화를 택했다. 기존 전통 한정식 코스에서 파인다이닝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고 식당 위치도 호텔 지하 1층에서 38층으로 옮겼다. 그는 “예전엔 한상차림 위주였지만 지금은 플레이팅을 중시한 코스형 서비스”라며 “외국인 고객이 많아져 한식의 멋과 맛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
최 총괄셰프는 한식이 다른 식문화와 크게 다른 점에 대해 “계절과 절기, 식재료 성질까지 고려하는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요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식은 이제 한때 유행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일식처럼 기호에 따른 하나의 중요한 장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식의 입체적 특성이 해외 시장에서 일종의 장벽이 될 수 있는 터라, 한식 조리 표준화와 미학적 해석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식 세계화의 방향에 대해선 “본연의 맛을 지키되 유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작정 (해당 국가에 맞춰) 현지화를 하는 것보다는 글로벌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무궁화에서는 된장, 유자, 매실 등 전통 식재료로 프렌치식 벨루테(프랑스식 흰 소스)나 모던 가르니시(장식)와 접목한다. 그러면서도 맛의 중심은 한식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남은 바람은 무궁화를 동양의 ‘미쉐린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완성하는 것, 또한 한식의 철학과 정통성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다. 최 총괄셰프는 “언젠가는 호텔이 아닌 곳에서도 무궁화의 철학과 스타일로 세계 식음 무대에 이름을 올렸으면 한다”며 “이를 위해 지금도 다양한 연구와 경험치를 꾸준히 쌓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