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방정부-민간 협력 시급
세계 및 금융 인센티브 필요
인재 확보 및 규제혁신 병행돼야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첨단산업 대전환’ 구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향성은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실행력 확보 없이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규제 혁신과 제도 설계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100조 원 국민펀드 구상 등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바이오, 콘텐츠, 방위산업, 에너지, 제조업 등 6대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는 ‘ABCDEF 산업 전략’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8일 “방향성은 타당하다”며 “산업 육성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세제 및 금융 인센티브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면 쓰겠다”고 말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주 실장은 “미국·중국 등도 자국 기업에 유리한 인센티브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ABCDEF 전략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으로 의미 있다”면서 “다만 속도 면에서 예산, 규제, 인재 확보에 병목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지방정부-민간 간 협력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100조 원 규모 국민펀드 조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김 교수는 “핀란드 국민연금이나 일본 GPIF와 유사한 모델로, 정치적 동력과 재정 설계의 투명성이 담보된다면 실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 재정 여건과 정치적 합의 수준을 고려하면 시범사업 후 단계적 확대가 현실적”이라며, “운용 구조의 투명성, 세대별 맞춤형 옵션, 독립 위원회 설치 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투자를 유도하려면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병행돼야 하는데, 이 대통령의 공약 방향은 오히려 반대로 간다”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이 주요 노동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가 주도하는 투자 프로젝트가 민간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 교수는 “과거 한국전력 채권이 시장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국책 프로젝트의 과도한 수익 보장 정책은 금융시장 왜곡 우려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 주도 첨단산업 투자는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며 “세액 공제 확대, 수출 지원 등 실질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불연속성 해소도 과제로 꼽았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정부 주도 투자가 유야무야됐던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초기에는 정부가 마중물이 돼서 동력을 얻더라고, 향후 수익성이 확보되면 경쟁력 있는 민간업체가 주도적으로 투자를 지속하게 해 정권 교체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정책의 질적 전환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정부 주도의 혁신이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민간 주도형 혁신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 양적 중심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정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공적 대전환을 위해선 인재 확보와 규제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종 교수는 “AI, 바이오,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전문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며 “글로벌 인재 유치와 이공계 교육 혁신, 규제 샌드박스 확대가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통상 불확실성도 과제로 남아 있다. 주원 실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한국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가 트럼프 행정부의 ‘온쇼어링’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삼일PwC는 보고서에서 “반도체 등 전략산업의 국내 생산 촉진 정책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온쇼어링(미국 내 공급망 이전) 정책과 충돌 가능하기 때문에 득실을 따져 지원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규모 투자와 R&D 확대 등은 재정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어 현실적인 재원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기술 투자 및 디지털 전환이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될 경우, 특히 중소 및 지방기업의 소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