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통령 선거까지 하루가 채 남지 않았습니다. 3일 오전 6시부터 진행되는 대선은 오후 8시 문을 닫는데요. 개표는 투표가 끝나는 오후 8시 이후 시작됩니다.
대선 결과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투표율이나 후보 간 득표율 격차가 영향을 주는데요. 각 방송사의 개표 방송을 지켜볼 국민의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질 예정이죠.
연예계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선 투표가 끝난 뒤에도 당분간 '주의보'는 이어질 전망인데요. 특히 젊은 팬층이 탄탄한 가요계에서 이번 대선과 관련해 각별히 주의하고 있는 모양샙니다. 다름 아닌 '손가락' 때문이죠.

가요계 성수기는 여름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그 성수기가 일찍 시작됐습니다. 대학 축제나 야외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데다가 6월 초 대선도 자리한 만큼, 이에 앞서 신곡을 발매하며 팬들을 만나는 그룹이 숱한데요.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컴백 소식으로 달력이 빼곡하게 찰 정도입니다.
그만큼 공식 석상에 서는 이들도 많습니다. 통상 아이돌이라면(?) '브이', '볼 콕' 등 카메라 앞에서 자신 있는 포즈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최근 일주일 새 취재진이나 팬들의 카메라를 마주한 아이돌 멤버들은 어딘가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카메라를 바라봤죠.
대선을 앞두고 '손가락 주의보'가 내려진 건데요. 검지와 중지를 펴는 브이, 검지로 볼을 살포시 찌르는 볼 콕 포즈 등이 1번, 2번 등 '특정 기호'로 풀이될 우려에 원천차단에 나선 겁니다.
지난달 19일 첫 정규 앨범 '오디세이(ODYSSEY)'를 발매한 그룹 라이즈는 최근 대면 팬 사인회를 진행했는데요. 여느 팬 사인회와 다를 바 없이 밝은 얼굴로 팬들을 마주했고, 카메라를 향해 다양한 포즈를 취했죠.
주먹을 내밀며 용맹한 모습을 뽐내던 멤버 은석은 '엄지 척' 포즈도 선보였는데요. 이때 옆에서 다른 멤버의 손이 날아들어 은석의 손을 덮쳤습니다. 엄지 척 포즈를 만류하는 모습이었는데요. 바로 옆에 있던 멤버 쇼타로도 은석의 손동작을 확인하고 그의 엄지를 꾹 눌러 다시 주먹 포즈를 만들었죠. 앤톤도 양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다가 불현듯 뭔가 생각난 듯 손을 곧바로 내렸는데요. 팬들을 향해 다급하게 양손을 내젓고 시선이 흔들리는 등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엔믹스 멤버 배이는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브이 포즈를 하다가 "안 돼! 브이 하지 마"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는데요. 옆에 있던 설윤도 브이 포즈를 취하다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다양한 숫자를 손동작으로 표현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이를 악물고 브이 포즈를 참아낸 멤버도 있습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멤버 가온은 일본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 스타 엔터테이너 어워즈 2025(ASEA 2025)' 레드카펫 행사에서 야무지게 주먹을 흔들며 인사해 웃음을 자아냈죠. 논란이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습니다.
지난달 28일 동국대 축제 무대에 선 NCT 드림은 정갈한 차렷 자세로 인증 사진을 게재했고요. 이즈나 멤버들은 자신들의 손을 이모지로 아예 가려버리면서 논란을 원천 봉쇄,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죠.

기획사는 대선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이슈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가이드를 마련합니다. 라이브 방송이나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관련 사안을 언급하지 않고, 대선의 경우 특정 후보나 정당이 연상되는 색상, 숫자에 대한 부분을 특히 조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데요. 최근에는 대중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을 벌인 사례가 하나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쏘아 올린 공이었죠.
카리나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에 사진 여러 장을 게재했습니다. 사진에는 일본 거리에서 숫자 '2'가 적힌, 빨간색 포인트가 들어간 점퍼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카리나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지가 불타올랐습니다. '카리나가 특정 정당 지지 의견을 낸 것'이라거나 '실수로 올렸을 것' 등의 의견이 나왔는데요. 대선을 앞둔 만큼 숫자는 '기호 2번'으로, 빨간색은 국민의힘 상징색으로 해석된 겁니다. 에스파의 팬덤 내부에서도 혼란이 일었습니다.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던 일부 팬들은 배신감까지 토로했죠. 논란이 확산하자 카리나는 1시간여 만에 이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카리나의 게시물을 곧바로 샤라웃(shout out)하고 나섰습니다. 이내 삭제됐지만, 백지원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hout out to(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은 사람)"라며 에스파의 사진과 노래를 게시했고요.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국민의힘 수원정 당협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카리나의 인스타그램 사진 캡처본을 올리며 "위선자들의 조리돌림. 신경 쓸 가치 없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심할 테지만 이겨내자"고 적었습니다. 해시태그에는 '카리나 건들면 니(너희)들은 다 X어'라고도 덧붙여 눈길을 끌었죠.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누구든 입고 싶은 옷 입으면 되는 거지, 정치 눈치 봐서 못 입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다음번에는 (민주당을 뜻하는) 파란색에 숫자 1이 있어도 저는 카리나님 응원하겠다"고 썼습니다.
'윤석열 탄핵 반대', '부정 선거론'을 주장해온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 씨도 '에스파 카리나 우리가 지킨다'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고요.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만화가 윤서인, 가수 JK김동욱도 비슷한 취지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이후 카리나와 소속사 측은 모두 오해라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카리나는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팬 소통 플랫폼 버블을 통해 "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이렇게까지 계속 오해가 커지고 마이가 많이 걱정해서 직접 얘기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저도 좀 더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 다시 한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정치색 논란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측도 비슷한 시각 공식 입장을 내고 "카리나는 일상적인 내용을 SNS에 게시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 후 곧바로 게시물을 삭제했다"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 당사 또한 향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소속사 측은 "더는 아티스트의 뜻이 왜곡되어 특정 의도로 소비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당사는 카리나를 비롯한 모든 아티스트의 보호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죠.
그러나 극우·보수 진영 측의 '카리나 샤라웃'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JK김동욱은 지난달 31일에도 스레드에 "카리나는 아저씨들이 지킨다고 여기저기 난리 났고 국민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킨다고 밤낮없더이다"라는 글을 게재했는데요. JK김동욱이 언급한 '아저씨'는 보수 성향의 이들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해당 글에는 "카리나는 아저씨들이 지키겠다"며 에스파 정규 앨범을 인증한 댓글도 달렸습니다.
또 온라인에는 카리나의 사진을 마치 선거 유세 포스터처럼 만든 이미지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본인 의도와 해명은 뒷전으로 밀린 채, 정치적 상징으로 이용되는 모양샙니다.

기획사에서 대선을 앞두고 소속 아티스트들을 각별히 지켜보는 이유인데요. 대선 본투표 당일에도 주의보는 이어질 예정입니다. 본투표 당일에는 투표 인증 사진을 게재하는 움직임이 이는 만큼, 손가락뿐 아니라 패션까지 주의할 전망이죠.
사전 투표에 참여한 멤버들만 봐도 철저한 '중립 패션'을 선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은 지난달 29일 사전 투표에 참여한 인증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사전 투표소 앞에서 아무런 포즈를 취하지 않은 채 카메라를 보는 제이홉의 모습이 담겼죠. 그가 착용한 모자부터 마스크, 티셔츠까지 모두 '검은색'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은 "모자 자수까지 검은색", "역시 프로 아이돌" 등의 호평이 나왔는데요. 당시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었던 제이홉인 만큼 "나보다 10배는 바쁠 스타가 사전 투표를 하다니. 나도 꼭 투표하겠다"고 감탄한 팬도 있었습니다.
가수 아이유도 지난달 30일 팬 소통 플랫폼 베리즈를 통해 "난 어제 사전 투표했다"며 인증 사진을 게재했는데요. 검은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 회식 티셔츠와 회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어 정치색 논란을 완벽히 차단했습니다.
신인 그룹 UDTT(우당탕탕 소녀단) 멤버 구한나, 한채희, 권예진도 사전 투표소를 찾았는데요. 검은색, 흰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채 주먹을 꽉 쥐거나 양손을 쫙 편 채 투표소를 가리키는 포즈를 취했죠.
이처럼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할 수 있는 손가락 포즈를 자제하거나,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이들은 네티즌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과도한 해석과 논란을 피하면서도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해, 아이돌로서 최대한의 사회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요즘처럼 정치적 해석이 일상화된 시대에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은 더 주의 깊게 받아들여지는데요. 팬층이 넓은 만큼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 속 오해의 여지를 줄이려는 이들의 신중한 행보는 모든 팬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려는 책임감 있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