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대통령직을 이용한 이익 추구가 극에 달했다고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가족의 미디어 기업인 ‘트럼프미디어앤드테크놀로지그룹(TMTG)’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 매입 등을 위해 2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은 지난해 9월 가상화폐 플랫폼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을 출범시켜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밈 코인 등을 올해 1월 판매한 데 이어 3월에는 ‘USD1’이라는 이름의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대통령 브랜드를 이용해 현금화한 전례 없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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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판 여론이 높다. 지난달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외곽 교외에 소유한 골프장 앞에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 ‘가상자산 부패’ 등 항의 팻말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그곳에서 자신이 발행한 밈(Meme) 코인 ‘오피셜트럼프($TRUMP)’를 가장 많이 보유한 220명을 초대한 만찬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에 항의의 뜻을 표명하기 시위에 나선 것이다.
닛케이는 가상자산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가 입장을 선회한 계기는 작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 업계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스스로를 ‘가상자산 대통령’이라고 칭하며 1월 20일 대통령에 재집권한 이후에는 가상자산 단체를 이끌었던 폴 앳킨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임명했고, 전임 조 바이든 정부의 엄격한 정책을 전환시켰다.
트럼프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에 관련된 인물의 면면도 논란이 거세다.
대표적으로 중국 태생의 가상자산 거물 저스틴 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직후 WLF에 7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자문으로 합류했다. 또 ‘선(Sun)’이라는 사용자 이름의 지갑에 1900만 달러 상당의 오피셜트럼프를 약 140만 개 보유해 오피셜트럼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인물로 꼽힌다.
선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인 2023년에 SEC로부터 시장 조작 등 사기 혐의로 소송을 당했으나 선과 SEC는 올해 초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소송 중단에 합의했다.
또 다른 인물은 세계 최대의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창업자 자오창펑이다. 자오 전 바이낸스 CEO는 자금 세탁 혐의로 미국 법무부에 기소돼 지난해 5월 징역 4개월형을 받고 수감됐다 풀려났다. 바이낸스 최대주주인 그는 미국 내 복귀를 위해 트럼프 측에 접근해 사면을 요청했다.
바이낸스는 올해 3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의 정부계 투자사 MGX로부터 20억 달러를 투자받았고, 이때 USD1을 활용했다. USD1은 시가총액 면에서 세계 유수의 스테이블코인이 됐고, WLF와 트럼프 일가의 이익에 크게 기여했다.
닛케이는 이 거래를 두바이에서 발표한 인물이 트럼프의 아들인 에릭과 자크 위트코프 WLF 공동 창립자라고 알렸다. 자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의 아들이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측근의 아들들이 부유층과 결탁해 막대한 규모의 가상자산 사업을 벌인 셈이라고 짚었다. 또 발표 시점도 위트코프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중동을 방문하기 약 2주 전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재임 중 자산을 신탁에 맡기고 사업 활동에서 손을 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을 자녀에게 맡기고, 자녀들도 이익 추구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닛케이는 대통령 본인이나 측근이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해 가상자산 대응을 잘못하면, 그 피해는 소비자와 금융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자산의 담보가 없는 가상자산은 거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치가 결정되며, 투기성이 강하다. 통제가 없으면 기존 금융기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2023년 미국 지역은행 연쇄 파산도, 가상자산 관련 기업과 거래한 은행에서의 예금 유출이 원인 중 하나였다.
가치 담보가 있는 스테이블코인에서도 신용도와 환금성이 낮은 회사채나 대출에 자금이 유용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났다고 닛케이는 강조했다.
닛케이는 스테이블코인이 테러나 범죄 자금 이동, 제재 회피에 사용된다는 지적이 있으며, G7 재무장관들은 가상화폐 탈취 자금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 대통령과 외국 세력의 가상자산 거래가 뒷돈의 경로가 돼 외교를 왜곡시킬 위험도 있다고 닛케이는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