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연산 5만 대 규모 공장을 짓는다. 현대차는 14일(현지시간) 사우디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의 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 부지에서 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축구장 56개가 들어설 규모 부지의 공장이다. HMMME는 현대차가 30%,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70% 지분을 보유한 합작 생산법인이다. 내년 4분기 가동을 목표로, 전기차·내연기관차를 혼류 생산할 공장을 짓는다.
사우디는 중동 최대 자동차 거점이다. 지난해 중동에서 판매된 249만 대 중 84만 대(34%)가 사우디 판매량이다. 현대차는 사우디를 전초기지로 삼아 자동차 수요가 급성장하는 중동권을 더 효과적으로 공략할 복안이다. 사우디 생산 물량은 우선 사우디에서 풀리고, 글로벌 사우스 신흥시장인 중동·북아프리카까지 수출될 전망이다.
현대차와 손잡은 PIF는 석유 없는 미래에 대비하는 ‘비전 2030’의 중점 사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점찍고 있다. 이번 착공식은 현대차와 PIF 양자 간 모빌리티 동맹을 공고히 한 기념비적 행사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이번 착공식은 현대차와 사우디 모두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며 “미래 모빌리티와 기술 혁신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초석을 놓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우디에서 전년(12만5029대) 대비 8.7% 증가한 13만5878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3만5000대를 팔아 전년 동기(2만8000대) 대비 25% 늘었다. 현대차그룹은 올 1분기 기준 점유율이 24%로 1위 도요타(26%)에 근소하게 밀리며 2위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올해 사우디 판매량 목표를 14만 대로 잡았다. 새 공장 가동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 도요타 추월의 시간이 확 앞당겨진다.
현대차의 사우디 진출은 정의선 회장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오랜 교류가 밑바탕이 됐다. 전략적 파트너십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미래를 기약할 만하다. 정 회장은 앞서 3월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자리였다.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에 부응한 조치였지만, ‘관세 회피’ 용도로만 볼 일은 아니다. 북미 시장은 현대차의 역점 시장으로 시장 지분 확대를 위한 현지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기차 공장의 생산 규모를 확대하고 전기로 제철소를 신설하는 것도 공급망 안정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
현대차의 국내 투자 청사진도 눈길을 더한다. 올해 24조3000억 원 규모로 잡고 있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다. 오랜 내수 침체에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쳐 벼랑 끝에 몰린 한국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기업 투자 확대는 한국 경제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가시적 증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물론 미국이 예고한 고율 관세는 부담 요인이다. 그러나 이번 사우디 투자와 같은 전략적 대응은 시장 지분 확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현대차의 의욕적인 국내외 투자가 통상 압박 대응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