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인의 영화 축제, ‘2025 칸 국제영화제’가 13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개막했다. 그런데 한국 영화계는 꽤 민망한 상황이다. 2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영화 출품작이 0편인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 그나마 홍상수 감독이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위안 삼을 대목이다.
홍상수 감독을 떠올리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하나 있다. 딱 10년 전 개봉한 그의 17번째 장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다. '다른나라에서'에 이어 제목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홍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와 홍 감독이 현재까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 결정적 작품이다. 주연배우 정재영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남우연상을, 같은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표범상을 각각 받아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모로 다양한 타이틀을 보유한 이 영화를 갑자기 소환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여러 상황에 빚대, 이 영화 제목은 종종 앞뒤가 변주 돼 쓰이곤 한다.
그러한 변주에 제법 들어맞는 상황이 최근 외식업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단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장소는 국회 국정감사장. 주인공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다. 당시 모 방송국의 창업 컨설팅 프로그램 '골목식당'이 화제를 모으면서, 백 대표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참고인 소환 명분은 외식 프랜차이즈업계의 문제점과 영세 자영업자 및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날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백 대표에게 "저희 지역구에 와서도 방송을 해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여수갑 지역구 이용주 의원은 아예 공개 청탁을 했다. 이 의원은 “골목식당 방송을 보니 주로 서울로만 가던데 여수에도 청년몰이 있는데 잘 안 된다. 여수에도 와 달라”고 말했다. 이에 백 대표는 “제 마음대로 안 되지만, 방송국에 얘기해보겠다”고 답했다.
이후 백 대표는 창업의 미다스 손, 예산시장 등의 성공사례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의 아이콘으로 탄탄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 백 대표와 더본코리아가 심각한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자체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많은 지자체가 더본코리아와 업무협약을 맺고 여러 지역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련의 논란으로 인해 사업이 무산되거나 보류되는 상황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홍보 영상 제작, 메뉴 개발, 행사 준비 등에 많게는 수백억 원의 세금을 투입한 것이 공염불이 될 위기인 셈이다. 특히 경북 울진군과 상주시는 2023년 더본코리아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구체적 사업 진행 없이 보류 상태다. 전남 강진군과 장성군 역시 협력 사업을 추진했지만, 논란의 여파로 난감한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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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햄’ 선물세트 품질 미달부터 감귤 맥주 함량 논란, 농지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임원의 성희롱 면접, 방송국 PD에 대한 갑질 논란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이렇듯 다양하고 심각한 논란을 야기한 백 대표와 더본코리아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백종원이라는 단일 브랜드에 과도하게 의존, 예산을 낭비하게 된 지자체의 안이함이 더 큰 문제다. 백 대표는 외식업 전문가이자 방송인일 뿐, 지역경제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전지전능한 구세주는 아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지자체와 수장들은 백종원이란 개인과 더본코리아라는 특정 기업에 ‘몰빵’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에 따른 세금 낭비와 지역경제 침체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비단 한 사람의 카리스마나 브랜드로 단시간에 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식업을 비롯해 어떤 사업이든 지속 성장하려면 장기적인 안목과 체계적인 계획, 투명한 절차,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협력과 조언이 수반돼야 한다. 그런 점을 간과한 여러 지자체와 8년 전 백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낸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