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올해 들어 4월까지 한국은행에서 약 71조 원을 빌려 부족한 재정을 메웠다. 국가에 여윳돈이 없어 한은에 터놓은 ‘마이너스 통장’(일시 대출 제도)에서 ‘급전’을 당겨 쓸 일이 많았다는 얘기다. 나라 살림살이가 참으로 궁핍하다.
한은이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대(對)정부 일시대출금·이자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4월 말까지 정부가 빌린 누적 대출금은 총 70조7000억 원이다. 2011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많다. 역대급 ‘세수 펑크’를 겪은 지난해 4월까지 누적 대출(60조 원)보다 10조7000억 원 많고, 코로나19 발병과 함께 재정 지출이 커졌던 2020년 같은 기간(25조9000억 원)의 2.7 배에 이른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부족한 자금을 한은에서 빌려 메우는 땜질 처방인 일시 대출 제도는 개인으로 치면 ‘마이너스 통장’이다. 공돈이 아니라 국민 혈세로 갚아야 할 빚이다. 정부가 쓸 곳(세출)에 비해 걷은 세금(세입)이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이 와중에 물가까지 가파르게 뛰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자주 한은으로부터 빌리고, 이를 통해 풀린 돈이 시중에 오래 머물면 유동성을 늘려 물가 관리에 걸림돌이 된다. 주먹구구식 세수 추계로 취약해진 재정이 부실한 경기 대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확인하게 된다. 어찌 끊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런 처방으로 경제 주체들이 위기를 넘기고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올해도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적신호만 줄줄이 켜진다. 벌써 미국발 관세 폭탄으로 수출기업 피해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유탄도 한반도로 날아든다. 내수 부진도 심각해 0%대 경제성장이 예상된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뒷수습이 안 되는 땜질 처방은 재정 악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재정 악화는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부를 수 있다. 국가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시나리오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은 마통’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정치권은 역주행만 하고 있다. 나라 곳간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퓰리즘 구호만 외쳐대는 것이다. 아무리 선거철을 맞았다 해도 너무 무분별하고 무책임하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공약을 쏟아내는 경쟁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어제는 100조 원짜리, 오늘은 200조 원짜리 공약을 내놓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 숙원 사업을 공약집에 넣기 위해 각개약진이다. 저렇게들 파렴치할 수가 없다.
5000만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먼저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납세자 관점에서 6월 대선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황당한 청구서로 바뀔 사탕발림 공약을 추려내는 것이 급선무다. 반시장·반기업 공약도 단호히 거부할 일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퍼주기’ 공약에 박수나 보내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가 아니라 유권자라는 사실을 거듭 명심해야 할 중차대한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