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위해 부모님 휴대전화를 본 자녀들이 마주한 고지서인데요. SK텔레콤(SKT)이 해킹을 당해 유심(USIM) 정보가 유출되면서 보안 조치로 가족의 유심을 재등록하거나 보호 설정에 나서면서 알게 된 금액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모르는 사이 가입돼 있던 각종 유료 부가서비스는 그야말로 다채로웠는데요. 날씨 알림, 주식 알림, 명상 음악, 심지어 반려동물 보험까지 “도대체 언제?”라는 의문 가득한 서비스들이 수년간 요금 고지서에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유심을 보호하려다가 그동안 보호받지 못한 지갑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관련 뉴스

“아버지 핸드폰에 2년째 나가던 명상음악 요금, 아빠는 음악 앱도 몰라요.”
“부가서비스만 6개, 월 4만 원… 부모님은 뭘 쓴 건지도 모르시네요.”
해당 내용이 담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과 유튜브 영상 댓글창에는 ‘숨은 요금’ 경험담이 폭주했는데요. 부모님 휴대전화를 확인한 뒤 찾아온 분노와 당혹감이 그대로 담겨있었죠.
‘주식 문자 알림 서비스’에 매월 1100원, ‘애완동물 보험료’ 1만1000원 등이 수년간 자동 청구되고 있었는데요. 가입자는 모르는 서비스, 청구는 꾸준히 되는 기묘함에 해킹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숨어있었다는 한탄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SKT 유심 대란의 순기능(?)’이라고 비꼬았죠.
부가서비스, 그냥 해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이 요금들, 해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통신사 공식 홈페이지에선 부가서비스 목록이 다 뜨지 않고, 일부는 외부 제휴사의 사이트나 별도 앱에서 해지를 진행해야 하는데요. 심지어 인증도 제각각입니다. 문자 인증, ARS 인증, 앱 설치까지 거쳐야만 해지가 완료되죠. 디지털 취약계층에겐 그야말로 커다란 장벽이 아닐 수 없는데요. 해지 포기를 선언한 이들은 “이게 UX(사용자 경험)냐, 다크패턴이냐”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다크패턴(Dark Pattern)’은 사용자가 쉽게 속도록 눈속임 온라인 인터페이스를 사용함으로써 소비자의 의도하지 않은 소비를 유도하는 온라인 설계 방식을 말하는데요. 2010년대 초부터 UX 디자인 분야에서 쓰이기 시작한 이 용어는, 사용자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선택을 제한해 특정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모든 인터페이스 기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해지’ 버튼은 무채색으로 작게 배치하고, ‘유지’나 ‘가입 버튼은 초록색에 크고 눈에 띄게 디자인하는 식인데요. 또 ’무료 체험‘이라는 문구 뒤에 작게 ’7일 후 자동 유료 전환’을 숨겨놓는 것 역시 전형적인 다크패턴이죠.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기술력’이 아닌 ‘수익 모델’로 기능하면,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와 돈을 그저 방치당하게 됩니다.
부가서비스 다크패턴은 특정 통신사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무료 체험을 가장한 자동 유료 전환, 요금제 변경 시 자동가입, 해지 경로의 복잡성은 모든 통신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면 그 돈은 그대로 매월 빠져나가게 되면서 누적 금액은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르게 되는데요.

실제 사례 조사만 살펴봐도 ‘절반 이상’이 이미 다크패턴의 피해자입니다.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의 ‘구독서비스 이용 실태조사(4월)’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무료 체험 후 자동결제를 당한 경험이 있고, 58.4%는 해지 과정이 어렵다고 느꼈는데요. 그 이유로는 ‘해지 메뉴 찾기가 어려움(52.4%)’, ‘복잡한 해지 절차(26.5%)’, ‘가입·해지 방법이 다름(17.1%)’ 등을 꼽았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다크패턴 사례집(1월)’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는데요. 62%가 해지보다 유지 버튼이 더 눈에 띄게 설계된 경험이 있었고, 74%는 모바일 앱 설치 유도형 알림을 경험했습니다. 67%는 자동 실행 광고를 겪은 바 있다고 응답했죠. 구독형 서비스에서는 과도한 해지 방해, 중요 정보 숨김, 특정 선택 유도 등이 광고·알림 분야에서는 자동실행 광고, 알림창을 통한 앱 이용 유도 등이 불만 사항으로 언급됐습니다.
이런 다크패턴의 피해자는 크게 세 분야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먼저 ‘나도 모르게 가입된 사람들’입니다. 유형의 피해자는 가입 과정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스마트폰을 처음 개통하거나 요금제를 변경할 때, 혹은 앱을 처음 실행하면서 ‘기본 동의’ 상태로 설정된 서비스들이 이에 해당하죠. 자신이 이용하지도 않은 ‘유료 부가서비스’에 가입됐단 사실을 수개월에서 수년간 요금이 빠져나간 뒤 알아채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가입은 간편한데, 왜 내가 가입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서비스. 이것이 바로 다크패턴의 대표 유형이죠.
다음은 가입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해지가 너무 불편해 결국 요금을 계속 납부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해지 절차는 복잡하고,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으며, 반복 인증을 요구하거나 특정 앱 설치까지 유도하기 때문인데요. 해지 UX 자체가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낮은 디지털 취약계층, 고령층인데요. 해지 안내도, 가입 확인서도 따로 없어 ‘그냥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유료 전환된 서비스들이 즐비하죠. 고객센터에 전화해 항의하면 “고객님이 동의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녹취파일을 들려주는 일도 있는데요. 그러나 많은 고령층은 이 절차조차 어렵고, 이러한 구조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어서 말없이 금액을 납부하는 것이 현실이죠.

해지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환불 절차인데요. 통신사들은 ‘3개월 이내 환불 가능’ 조항을 내세우거나 제휴 서비스라며 책임을 넘기는 경우가 많죠. 결국, 절차의 번거로움으로 환불을 포기하고, 그 구조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현행법에는 이 다크패턴을 직접 금지하는 조항이 없는데요. 전자상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을 통해 ‘기만적 행위’로 제재할 수는 있지만, 명확히 ‘부가서비스 UX 설계’가 처벌된 전례는 없죠.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의 ‘다크패턴으로부터 이용자 보호’ 보고서에서 다크패턴에 특화된 입법 필요성을 제기한 정도인데요. 방송통신위원회가 1월 ‘디지털서비스 이용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통해 유형을 분류하고 사업자 권고에 나섰지만, 강제성은 없습니다.
이제는 해킹만큼 무서운 ‘어둠의 요금제’를 뜯어봐야 할 때인데요. ‘그깟 얼마’라고 넘기기엔, 모이면 꽤 묵직한 액수입니다. 통신사 앱에 로그인하여 부가서비스 전체 내역을 확인하거나 최근 6개월 요금 청구서 살펴봐야 하죠. 무료 체험 후 유료 전환 항목 여부를 체크하고, 해지 버튼의 위치와 접근성뿐 아니라 가족의 휴대전화도 함께 점검해 보는 ‘수고’를 감내해 봅시다. 지금 내 통신비엔, 내가 모르는 항목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