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 “접근권은 기본권이다”

입력 2025-04-2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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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사단법인 무의 이사장

작년 12월 19일, 한참 계엄 사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 대법원은 장애인 권리에 있어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 모두의 1층이라는 공익 프로젝트도 있다. 한 사람의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는 불과 2cm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 일부다. “모두의 1층” 경사로 확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무의에겐 감격적인 일이기도 했다. 장애인 당사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인 장애인 당사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가는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을 만들어 놓고도 매장의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최초 기준을 바닥면적 300㎡(약 90평)로 정하면서 대부분 동네 가게들이 경사로 설치를 할 의무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결과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동네 대부분의 가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법원 판결은 이렇게 국가가 법을 잘못 만들어 장애인 접근성을 수십 년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으니, 소송을 제기한 원고에게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는 취지다. 상징적인 위자료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디어 장애인 접근권이 기본권임을 대법원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로써 가게에서 경사로 등을 설치할 의무를 규정하는 편의증진법의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피고(국가)는 법 개정을 통해 기존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해서도 단계적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해 장애인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 개정과 실행 전까지 최소 수년 동안 현장 접근권의 공백상태는 지속될 전망이다. 여전히 성수동 같은 소위 핫플레이스 가게들의 휠체어 접근 비중은 20%를 넘지 않는다.

경사로를 놓는 현장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가장 큰 이슈는 비용이다. 턱 높이와 앞 도로 사정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경사로를 맞춤식으로 설계하고 튼튼하게 설치하려면 최소 100만~200만 원까지 비용이 든다. 지난 4월 11일 열린 ‘장애인 접근권 개선을 위한 입법 행정 과제 토론회’에서 무의와 함께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두루의 한상원 변호사는 “설치비는 정부 지자체 사업주 등이 나눠서 부담하고 사업주 본인분담금에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또한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일환으로 소상공인매장 경사로 설치 사업을 활성화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16일 글로벌 제약사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무의와 함께 접근성 확산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례는 눈에 띈다. 대법원 판결 후 기업 최초로 진행하는 교통약자 지원 사업이다. 판결이 장애인 기본권 보장의 상징물로 ‘경사로’를 부각시킨 만큼 직원들이 직접 경사로설치 장소를 찾고 경사로를 지역 소규모 매장에 설치하는 사업이다. 특히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국내 전 인구의 30%를 넘긴 교통약자(노인, 장애인, 어린이, 유아동반인, 임산부)에 주목했다. 전체 인구는 줄고 있으나 교통약자 수는 증가 중이다.

각 기업들이 지역사회 접근성 향상을 통해 기본권을 충족시키는 데 경사로 설치는 상징적인 사업이 될 수 있다. 교통약자 기본권과 현장 어려움 사이의 격차를 ESG 활동으로 좁히는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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