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정권은 5년, 기업은 50년

입력 2025-04-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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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뭘 해도 불안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한 대기업 임원에게 최근 사업 전략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투자도, 인수합병도, 신사업 진출도 모두 ‘올스톱’ 상태라는 하소연이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사상 최악의 불확실성 속에서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 무엇을 선택해도 틀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불안의 뿌리는 단순한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예측 불가능한 국내외 환경, 일관성 없는 정책, 예측 불가능한 규제다. 기업이 길을 잃은 이유다.

글로벌 리스크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상호관세와 공급망 재편을 내세워 노골적인 보호무역 기조를 밀어붙이고 있다. 환율은 치솟고 무역 규칙은 수시로 바뀐다. 석 달 유예된 상호관세는 언제든 다시 한국 기업의 목을 죌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협상에 나섰지만 결과를 장담하긴 어렵다. 기업은 손발이 묶인 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조기 대통령선거라는 대형 변수가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기업 환경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다. 여야의 세제 정책은 정반대 기조다. 어떤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중장기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세율 자체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세제 ‘롤러코스터’다. 5년마다 반복되는 조세정책 변경은 기업의 숨통을 끊는다. 장기적 투자 계획이 불가능한 이유다. 장기적 투자 계획을 세우려면 정책 일관성이 필수다. 그러나 한국의 조세 정책은 5년마다 방향이 바뀐다. 기업으로선 예측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방향타를 잃은 셈이다.

노동 규제 역시 기업을 옥죄는 요소다. 매 정권마다 노동 정책은 온도차가 크고 그때마다 대응 방향도 달라진다. 오락가락하는 노동정책 아래에 기업은 언제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예측 가능한 노동정책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선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최근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들은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들 수 있어 기업들로선 최악의 리스크다. 정치권은 경제 논리 대신 정치적 이득만을 앞세운다. 기업은 정쟁의 희생양일 뿐이다.

이처럼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은 움츠러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말 실시한 ‘2025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에 따르, 300인 이상 기업 중에서는 61%가 긴축 기조를 채택했다. 2016년 이후 최고치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이를 복원하려는 정부의 전략은 여전히 미흡하다. 전략 산업 육성을 외치지만 정작 기업이 움직이기에는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다가오는 대선은 한국 산업계에 중요한 분기점이다. 기업들은 다음 정부가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법인세, 친환경 규제, 노동시장 등 핵심 정책은 일관성 있게 장기적 관점에서 유지돼야 한다. 단기 성과에 목매는 포퓰리즘 정책은 산업 생태계를 파괴할 뿐이다.

무엇보다 기업을 규제 대상이 아닌 국가 경쟁력의 파트너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혁신하려는 기업가들의 의지를 억누르면 안 된다.

정권은 5년이면 끝나지만, 기업은 50년 이상을 내다본다. 좋은 정부는 기업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정부가 신뢰를 보여줄 때, 기업은 투자를 결정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축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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