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도 한국의 경제·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신용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무질서한 광장정치가 계속돼 정부의 위기 수습 능력이 약화된다면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디스가 부여한 우리 국가신용등급은 ‘Aa2’이다. ‘Aaa’, ‘Aa1’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계엄 혼란 때도 이 등급을 유지했으나 “정치적 불안이 지속될 경우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제사회 우려가 가시지 않는 엄중한 현실을 보여준다.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정치 분열’과 ‘재정 악화 우려’를 이유로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우리와 같은 ‘Aa2’에서 ‘Aa3’로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의 당면과제를 짚었다. 하지만 큰 틀로 보면 지난해 12월 프랑스에 보낸 경고와 판박이로 닮았다. 보고서는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경제·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번 결정의 매우 분열적인(divisive) 성격을 고려할 때 거리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은 빡빡한 일정 때문에 각 후보가 내놓을 경제 정책의 명확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무디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에 대해선 “경제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적이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제를 내세웠다”며 “확장적 재정 정책은 한국의 부채 부담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CHIPS) 등의 수정 가능성, 이에 따른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 산업 불황 등의 난제도 주목했다.
한국 경제는 탄핵 정국의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기 무섭게 미중 관세전쟁이란 미로에 갇혔다. 수출 경제가 갈 길을 잃을 판국이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후진적·퇴행적 정치이다. 국익 앞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국익보다 당리당략이다.
민주당은 16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을 위한 청문회를 연다. 최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을 불러모은다. 경제 태풍에 대응해야 할 이른바 ‘F4’ 성원이 모두 본연의 임무마저 내버려 두고 정치공방 무대에 서야 한다. 트럼프 관세폭탄이 아무리 크게 터지고, 미중 충돌이 아무리 큰 소음을 내도 이날은 대처하기 어렵다. 민주당 일각에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재탄핵 주장도 나온다.
일본·독일 정치권은 최근 당파를 초월한 협치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관세 문제 대응을 위해 좌우 연립 정부 출범까지 합의했다. 일본도 정치 공방을 자제키로 했다. 우리 정치권은 딴판이다. ‘F4’를 소환해 정치공방 불쏘시개로 쓸 정도다. 무디스의 경고가 뭔 뜻인지,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정치권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