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귀(관세부과) 날자 배(현대차그룹 미국 공장 준공) 떨어졌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배가 떨어지자 까마귀가 날았다. 여기에서 까마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부과’고, 배는 현대자동차의 세 번째 미국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HMGMA 준공식이 열렸다. 이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현대차의 잔칫날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관세를 발표하는 바람에 마치 현대차가 관세를 피하기 위해 공장을 준공한 것처럼 비쳤다.
현대차는 억울했다. HMGMA 기공 첫 삽을 뜬 건 2022년 10월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도 전의 일이다. 코로나19 시기 인력부족과 원자잿값 상승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둘러 2년 5개월 만에 공장을 준공했는데 하필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연일 관세 발언이 쏟아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공장 준공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세에 대비해 공장을 짓고 제철소를 만든다기보다는 미국에서 앞으로 생산할 차량이 그린 스틸(친환경 공정으로 만들어진 철강 제품)을 써서 저탄소강으로 차를 제조해 팔아야 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준비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명민한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사상 최대 대미 투자를 트럼프 대통령의 공으로 돌렸다. 현대차가 HMGMA 건설에 착수한 2022년을 강조하게 되면 공장 준공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공으로 돌아가게 된다. 정 회장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선 정 회장은 “우리가 미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라면서 “조지아주 서배너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은 2019년 서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웃으면서 “맞다”고 답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의 생산을 늘리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보다 미국에서 차가 더 많이 팔리기 시작해서다. 현대차·기아는 1986년 미국 시장 진출 이후 39년 만에 올해 누적 판매 3000만 대 달성을 앞두고 있다. 2000년 미국에서 40만 대 판매에 머물던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기점으로 2006년 75만 대, 기아 조지아 공장 준공 이듬해인 2011년에는 113만 대로 판매가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71만 대를 판매하며, 국내(125만 대)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포드에 이어 2년 연속 4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 및 미국 대규모 투자는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인 도전과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의 미국 공장 증설은 트럼프 관세와 맞물려 ‘신의 한 수’가 됐다. 치명적인 관세부과를 현지 물량 증대로 대응해 리스크를 일부 줄일 수 있게 돼서다. 이를 두고 현대차 내부에서는 ‘천만다행’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불확실성(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긴 호흡을 갖고 시장을 지켜본 경영진의 빠른 판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