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하나, 둘, 셋, 클리어

입력 2025-03-0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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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200줄(Joule) 차지(charge). 하나, 둘, 셋, 클리어(clear).” 환자의 몸이 잠깐 들썩하더니 모니터에 그려지는 심장박동은 제 모양을 찾았다. 그제야 30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우리 의료진의 입에선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목욕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40대 남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그를 구급대원이 초기에 심폐소생술로 잘 처치했고. 다행히 병원까지 이송하는 시간도 짧았기에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환자의 불규칙한 맥박을 돌려놓는 역할을 한 제세동기(defibrillator) 역시 환자의 생명을 살린 또 다른 은인이다.

제세동기는 의학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골 소재다. 이 기계는 1956년 폴 모리스 졸이라는 심장전문의에 의해 발명됐는데, 심폐소생술 중에 주로 사용된다. 현재 공공장소나 아파트 등에 비치된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이 제세동기의 일종이다. 이렇게 흔히 접하는 기계지만 제세동기의 작동 기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정지 환자에 사용하기 때문에, 사라진 심장박동을 전기 자극을 주어 되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세동기는 심장 리듬이 제로상태에선 사용할 수 없는 기계다. 오히려 이는 괴상하고 불규칙한 리듬(부정맥 등)이 생겨 제대로 수축할 수 없는 심장에 전기 자극을 가해 심장 리듬을 제로상태로 만든 후 심장이 가진 자동박동성을 회복시켜 주는 장치다. 쉽게 말하면 버그가 난 컴퓨터를 껐다 다시 재부팅하는 리셋(reset) 작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2025년도 훌쩍 지나 벌써 3월이다. 연초에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맘대로 안 되기에 어그러지고, 도대체 어떻게 꼬여버린 것인지 실마리조차 찾기 어려운 일들이 생길 즈음이다. 이때 ‘역시 나는 안 돼’ ‘어차피 작심삼일이 인간 본모습인데’라며 포기하고 주저앉는 대신 내 안에 있는 역동성 있는 리듬을 찾아 어그러진, 또 꼬여버린 계획을 클리어하는 시간을 갖자. 다시 힘차게 펄떡거릴 심장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며, “자! 준비.” 이제 내 안에 존재하는 좋은 기억, 희망, 감사란 제세동기를 꺼내들고 풀(full)로 충전한 후 큰 소리로 외쳐보자. “하나, 둘, 셋, 클리어.”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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