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재계, ‘그룹지배구조 강화 카드 늘었다’

입력 2009-07-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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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회사법 통과...은행업 진출은 “글쎄”

"은행업 진출에 관심 없다."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SK, 롯데, 한화 등 자의반 타의반 은행업 진출이 예상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의 공식적인 입장도 “관심 없다”거나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보유 한도 상향 등의 내용을 포함한, 즉 대기업들이 은행업에 실질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법이지만 일단 대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그러나 개정된 금융지주회사법이 지난 4월 임시국회를 통과한 은행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과 은행지주회사의 지분율 변화 보다 비은행지주회사 관련법의 개정에 주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는 10월 2일로 예정된 개정된 금융지주회사법 시행의 함의는 우선 금산분리의 완화에 따라 대기업들이 금융과 제조업을 동시에 영위할 수 있는 이른바 ‘GE모델’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그룹 지배구조의 보험사 또는 금융투자(증권)회사를 보유한 지주회사도 일반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돼, 총수 일가의 안정적인 그룹 지배구조 유지가 보다 용이해졌다.

대기업들의 표면적인 냉랭한 반응과는 달리 내심 ‘군침을 삼킬 만한’ 법적 정비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전경련은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통과와 관련해 “산업자본이 은행 증자에 참여할 길이 열렸다”면서 “은행의 대출 여력이 확대되면 기업들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GE모델 길 열렸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시행 이후 국내 대기업의 행보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GE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전기, 전자 회사로 오랜 기간 성장해 온 GE는 동시에 1981년 잭웰치 회장 취임 이후 거대 금융회사로 성장했다. GE의 전체 자산 절반이 금융에서 나온다.

GE의 지배구조는 지주회사인 GE 아래 제조업 부문 자회사와 금융부문 자회사로 나눠져 있고다. 특히 GE가 금융부문에 중간 지주회사인 GE캐피탈서비스 아래 소비자 및 기업 금융회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구조이다.

이전까지 국내 산업발전 정책의 큰 틀은 제조업체는 제품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금융업체는 기업 대출 등을 포함한 금융업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이 완화되면 대기업들이 자사의 금융자산을 보다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게 된다.

또 지배구조와 관련해 삼성 등 제조업 계열사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계열사인 금융회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고자 하는 대기업들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산업자본이 은행만 소유하지 않는다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증권사나 보험사를 영위하는 게 쉬워질 전망”이라면서 “금융지주회사가 일반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에 걸림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개정안의 통과와 관련해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통한 지배력 확장 및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거나 “금융업과 제조업 사이의 방화벽이 없어져 최근 GE와 같이 기업부실 혹은 금융부실이 다른 부문의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삼성 “지주회사 전환 경우의 수 늘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삼성은 개정안 통과 후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됐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물러나면서 삼성은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장기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이론적으로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하나의 지주회사 아래 둘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만으로 삼성생명에서 삼성전자를 분리해야 하는 삼성의 숙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개정안에도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로부터 수탁 받은 자산을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력 확장에 사용하는데 제한이 있는데다, 보험 지주회사의 경우 지주회사가 직접 제조업을 소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보험자회사를 통해 제조업 자회사를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자회사인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삼성측도 개정안의 통과와 관련해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의 실익이 없더라도 경우의 수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실례로 삼성은 삼성생명을 보험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이 지주회사 밑에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는 방안이 가능하다. 또 에버랜드를 보험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자회사로 두는 방안도 검토대상으로 거론된다.

◆롯데 “은행 인수 정해진 것 없다”

롯데그룹도 이번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롯데그룹은 현재 롯데캐피탈,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등 3개의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증권업 진출을 검토한다는 설이 꾸준히 나올 만큼 금융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노무라 증권 출신의 금융인이었다는 점도 이같은 예상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대기업의 은행지분 소유폭이 확대돼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카드와 손해보험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며 은행인수 추진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현재 업계 7위권인 롯데손해보험의 외형과 내실을 키우기 위해 그룹 계열사들와 잇따른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롯데카드도 롯데백화점 카드와 사업을 통합한 이후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의 은행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부회장이 지휘하는 ‘제2의 롯데그룹’의 중심은 금융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금융과 유통업에서 얻어지는 유동자산을 바탕으로 향후 계열사간 시너지를 높이고 변화된 금융시장에서 미래성장동력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유통업에서 비롯된 풍부한 유동자금을 바탕으로 계열사간 시너지를 높이고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금융시장 변화에서 미래 신사업을 모색하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기업의 생리가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며 “금융업종에 대해 강화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은행지분 인수에 대해서도 원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SK “공정거래법 개정에 관심”

금융부문 사업을 강화하려는 SK그룹은 이번 법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하나은행으로부터 분사되는 하나카드에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이 지분 참여를 검토하고 있어, 은행업 진출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업계에서는 지난 2001년 전북은행 카드사업 부문 인수 추진 등 신용카드 사업 진출을 시도했던 만큼 SK텔레콤이 신설 하나카드사에 지분 49%로 경영에 참여하는 정도의 협상이 진행되겠지만, 향후 SK그룹은 하나금융지주회사 지분을 법상 상한선인 9%까지 매입해 주요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은행업에 관심이 없다"고 강조하고 "SK증권과 연계된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를 허용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SK그룹은 SK증권을 매각하지 않고 그대로 자회사로 보유한 채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할 수 있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한화 “보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점쳐”

한화그룹은 여러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탓에 은행업 진출과 금융지주사 전환에 대한 얘기가 많지만 그룹측은 명확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은행업 진출과 금융지주사 전환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화그룹의 입장과 다르게 시장에서는 계열사인 대한생명을 중심으로 한화손해보험과 한화투지신운용, 제일화재, 한화증권 등을 엮어 보험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보험사(대한생명)를 지주사로 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선제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가 있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보험사의 경우 계약자 이익 훼손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 보험지주회사 체제의 경우 지주사가 직접 지배하는 경우에만 비금융계열사 보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생명이 다른 비금융계열사를 보유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한화손보나 제일화재가 제조업 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동양 “지주회사 전환 본격화 될 듯”

"금융지주법 시행령이 가시화되면 동양그룹의 행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금융지주회사법 통과는 동양그룹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동양그룹의 준지주회사가 그룹 주력 계열사인 동양종합금융증권과 동양생명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지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양메이저는 동양캐피탈을 100% 소유하고 있다. 또 동양캐피탈은 동양종합금융증권과 동양생명을 각각 15%, 17%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양메이저 중심의 지주회사 전환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금융지주법 통과를 계기로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올해 동양생명 상장을 통해 상당한 자금도 확보할 수 있는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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