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반면교사로 남을 '쩐의 전쟁'

입력 2024-10-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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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꾼 허만정이 막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셋째 아들의 경영 수업을 구인회에게 부탁했다. 구인회는 이름난 장사꾼이었고, 허만정은 구인회의 장인 허만식의 육촌이었다.

허만정은 거액의 사업 자금도 댔다. 경영 능력과 자본, 인재가 합쳐진 이 동업은 3대 57년간 이어졌다. LG그룹과 GS그룹 동업의 역사다.

구씨와 허씨 양가는 가족에 경조사가 발생하면 얼마씩 지출한다는 약속까지 해놨다. 동업자 간 신의도 셈을 분명히 하는 바탕 위에서 지속된다는 철저한 동업 마인드다.

두 가문은 2005년 LG와 GS로 그룹을 분리했다. 계열 분리 후에도 두 그룹은 필요에 따라 공동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업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재계 동업의 모범사례다.

최근 영풍과 고려아연의 75년 동업이 흔들리며 재계가 시끄럽다. 영풍은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을 5% 이상 공개매수하며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고려아연 역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가 세운 영풍과 고려아연은 장씨 가문이 영풍을, 최씨 가문이 고려아연을 각각 경영하는 독립경영체제를 이어왔다. 고려아연은 1대 주주인 영풍과 장형진 영풍 고문을 포함한 장씨 가문 등 우호세력과의 연대로 수십년간 경영권을 이어왔다.

문제는 고려아연이 3세로 경영 승계가 이뤄지면서 촉발됐다. 2세인 장형진 영풍 고문은 1946년생이고,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1975년생이다. 나이 차이만 30년에 달한다. 세대 차이와 경영 가치관 등 간극이 너무 벌어지며, 상대 경영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흔들렸다. 결국, 두 가문은 결국 경영권 전쟁에 돌입했다.

'한 지붕 두 집안'의 그룹 경영이 세대를 이어가면,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동업으로 시작한 대기업들이 계열 분리나 동업 청산 등을 통해 회사를 쪼개온 것도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은 1948년 형 이병각씨의 친구인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해 사업을 일구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1960년 3월 동업을 청산했고, 조 회장은 함께 나온 15명과 함께 1962년 효성물산을 설립해 또 다른 대기업을 일궜다.

동업을 청산할 당시 사연은 2007년 효성그룹 40주년 사사(社史)에 공개됐다. 당시 이 회장이 조 회장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하면서 지분 정리를 하게 된다. 당시 더 많은 출자금을 냈던 조 회장은 공사의 주력 업체인 제일제당 대신 동업 청산금 3억 원, 그리고 은행관리를 받던 한국타이어와 한국나일론의 지분을 들고나왔다.

조 회장은 이를 놓고 "내가 살아오는 동안에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결단 중에 가장 현명한 결단이었다. '때로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요, 버리지 않는 것이 곧 잃는 것이다'란 역설적인 교훈은 내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30년 넘게 젊은 세대와 수차례 동업한 김병태 소바젠 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동업 시 갈등 극복 비결에 대해 "무조건 양보하면 된다. 동업했던 파트너와 죽기 살기로 싸워 이긴 것은 이긴 게 아니다. 반대로 양보하고 나오면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사업 파트너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지금 상황을 보면, 이미 누군가가 양보할 타이밍은 지났다. '쩐의 전쟁'으로 불리는 경영권 다툼에서 누가 이겨도 오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재계의 반면교사 사례로 남을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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